마법의 전환사채…화신테크, 돈 한 푼 안들이고 유테크 지분 사들여
인수자, 전환사채 발행해 '외상'
매도자는 이자나 주가차익 기대
기업 가치 부풀려 지분 매수 땐
'뻥튀기 출자' 통로 악용될 수도
[ 나수지 기자 ] 현금 없이 기업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을까요? 요즘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 상당의 기업 지분을 인수하면서 현금 대신 전환사채(CB)를 발행해주는 방식입니다. 스와프거래이자 일종의 ‘외상’ 거래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올 들어서만 화신테크 미래SCI 한일진공 등이 지분이나 자산을 인수할 때 CB를 발행해 이것으로 대금을 치렀습니다. 공시에선 ‘대용납입’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과거 유행한 현물출자 방식의 유상증자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현물출자 증자는 상장기업 신주를 받는 대가로 현금 대신 현물(주식 또는 부동산)로 대납하는 걸 의미합니다. 반면 ‘CB 대용납입’은 기업 경영권이나 지분을 사오기 위해 매각자에게 CB를 발행해서 지급합니다. 인수자는 당장 자금이 없어도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 있어 좋고, 매도하는 측은 신주보다 투자 조건이 유리한 CB를 취득할 수 있어서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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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화신테크 CB 만기 이자율은 연 5%입니다. 매각자는 CB 금리보다 주가 상승에 따른 주식 전환을 기대합니다. CB는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하는 리픽싱 조항이 있어 유리합니다.
CB를 활용한 거래는 소액주주에게 악재일 수도, 호재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 다각화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CB 발행에 따른 대기물량 부담(오버행)은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규 사업 진출 효과와 오버행 부담을 저울질해봐야 합니다. 화신테크 주가는 공시 발표 당일 6.23% 떨어진 데 이어 다음날 12.8% 급락했습니다. 시장에선 유테크와 지이 지분 취득에 따른 CB 물량 부담을 크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장기업이 제대로 된 회사 지분을 적정한 가격에 인수한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출자금액이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 자산 총액의 10%를 넘으면 주요사항 보고서를 통해 외부기관 평가의견서 등을 첨부하고 출자의 타당성을 기재해야 합니다. 평가의견서에선 출자 대상 기업의 실적 추이와 사업 전망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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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수지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