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작년 11월 무렵부터다. 귀 아프게 들리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사그라들었다. 이론적 뒷받침이 약한 데다 서민·골목경제에 파괴적 결과가 뚜렷해진 데 따른 불가피한 퇴각이었다. ‘소주성 3인방’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홍장표 경제수석도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
대신 등장한 슬로건이 ‘포용국가’다. 성장의 혜택이 소수 부자와 대기업에 집중돼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며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브랜드가 바뀌었지만 정책 내용은 소주성 때와 대동소이하다. “소주성은 지속적 형태로 더 강화됐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 그대로다. 포용성장 표방 석 달 만에 정부가 내놓은 야심작이 설 연휴 직전 발표된 24조원 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다. 14개 대형 광역지방자치단체의 민원 사업을 경제성 분석없이 허가해준 것이다.
차별 부르는 '무늬만 포용'
“그렇게 욕하던 토건사업 아니냐”는 비판에 정부는 “지방이 잘살아야 포용국가”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포용보다는 차별정책에 가깝다. 가장 많은 4조70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된 ‘김천~거제 간 남부내륙철도’를 보자. 이 사업은 2017년 예타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그런데도 과도한 지원금이 책정된 것은 다른 지자체의 유망사업 기회를 막는 역차별로 귀결된다. ‘약자 보호를 위한 차등은 정당하다’는 존 롤스 식의 정의론으로도 변명이 어렵다. ‘정권 실세’라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큰 정치적 성과를 얻은 데다 지역 개발 수준이 높은 영남권 예타가 8조2000억원으로 호남권의 3.3배에 달하는 점은 표용(票用) 정책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운다. 대형 SOC의 속성상 중소건설사보다 대형건설사로 일감이 몰린다는 점도 약자 우선의 포용성장 취지와 상충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 예타 면제 조건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예타 없이 지은 영암 포뮬러원(F1) 경기장이 8년간 6000억원 누적적자를 낸 ‘참사’가 곳곳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약자 저격한 최저임금·정규직화
포용이라 쓰고 차별이라 읽어야 할 정책은 예타 면제만이 아니다. ‘시간급 1만원’을 향해 질주 중인 최저임금제도 마찬가지다.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다며 밀어붙였지만 대량 해고 사태를 부르고 말았다. “조금 덜 받더라도 일하고 싶다”는 약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자신들의 임금을 높이려는 조직화된 거대 노조의 작전에 모른척 눈감은 탓이 크다. 그 결과 최하위 20%의 소득은 1년 전보다 9.6% 급감한 반면 최상위 20%는 7.8% 치솟는 비극이 연출됐다. 미국에서 값싼 유색 노동자를 ‘제거’해 백인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우생학적 함의를 안고 최저임금제가 탄생했다는 얘기를 떠올리게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무원 대거 증원 등도 차별과 배제를 부르는 정책이다. 100% 정규직화가 누군가에게는 ‘로또’지만 취업시장 최약자인 취업준비생들에겐 문 자체가 막히는 날벼락이다. 인건비만 연 40조원으로 추정되는 ‘공공부문 81만 명 채용’은 후세에 더할 수 없는 짐을 떠넘기는 세대 차별이다.
사실 포용국가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포용적 자유주의’는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제시된 국정철학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때부터 ‘창조경영으로 포용적 성장의 지평을 열겠다’는 다짐을 반복했다. 고민해야 할 것은 포용국가를 현실화할 제대로 된 방법론이다. 조직되지 못해 힘없는 사람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포용국가를 말할 수는 없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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