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불세출의 영웅 또는 희대의 대량 학살자,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해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주인공. 그가 건설한 알렉산드리아(‘알렉산더의 도시’라는 뜻)라고 불리는 30여 개 도시는 그리스 문화의 동점(東漸)과 헬레니즘 문화 형성에 거점 역할을 했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가진 병사가 전투 중에 도망을 갔다가 잡혀오자 알렉산더 대왕이 호통을 쳤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그 이름값을 하든지 해라.”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신경을 쓴 알렉산더 대왕이 2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마케도니아라는 조국의 국명(國名)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나라는 남북한을 제외한 191개 유엔 회원국 중 188개국과 수교했다. 아직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마케도니아와 시리아, 쿠바뿐이다. 한국이 마케도니아와 외교관계를 맺지 못한 이유는 국명 때문이었다.
유고의 한 연방이던 마케도니아는 1991년 마케도니아공화국(ROM: Republic of Macedonia)이란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국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북부지방의 지명에 마케도니아를 사용하고 있는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이 지역에 대해 영토주권을 주장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국명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문화 인식 차이에서 시작된 분쟁
분쟁의 이면에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양국의 뿌리 깊은 인식 차이가 있다. 그리스는 자국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로마제국 시대에 그리스에 살던 고대 마케도니아인만이 진정한 마케도니아인이라고 여기며 현재 마케도니아에 거주하는 슬라브계는 마케도니아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케도니아의 입장은 다르다. 현대 마케도니아인은 고대 그리스계가 아니라 6~7세기에 이주한 남슬라브 계통이다. 이들은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독립투쟁을 거치면서 현 마케도니아 민족으로 형성됐고, 요시프 티토의 유고연방에서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명칭으로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
양국은 또 서로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마케도니아가 수도 스코페에 있는 공항에 알렉산더의 이름을 붙이자 그리스 정부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마케도니아는 1993년 그리스의 반대에 부딪혀 ‘전(前) 유고공화국 마케도니아(FYROM: The 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라는 명칭으로 유엔에 가입해야 했다. 이후에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것을 막았다.
국제 관행도 다양했다. 많은 나라가 ROM이란 국명을 사용했으나 FYROM과 ROM이란 명칭을 동시에 사용한 국가도 상당수에 달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은 ROM이란 국명을 인정했으나 EU 회원국인 프랑스, 독일, 스페인은 FYROM을 사용했다. 한국은 1995년 FYROM이란 명칭으로 수교할 것을 제의했으나 마케도니아가 거부했다. 이후 이중국명 방식(우리는 FYROM, 마케도니아는 ROM을 사용) 등 다양한 안을 검토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갈등은 2017년 조란 자에프 마케도니아 총리 취임을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에프 총리는 마케도니아가 EU와 NATO에 가입해야 국가 분열을 막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하에 그리스와의 협상에 착수했다. 그리스도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발칸지역에서 마케도니아가 서방의 일원으로 지역 안보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확신하고 협상에 임했다. 그 결과 양국은 작년 6월 마케도니아 국명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Republic of North Macedonia)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어느 국가도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적 유산을 독점하지 않는 방식에 동의한 것이다.
과거 역사가 미래 발목 잡아선 안 돼
그러나 이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양국 모두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저항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마케도니아 의회가 지난 1월 초 헌법개정안을 비준했고, 그리스 의회가 1월 말 국명변경 합의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킴으로써 28년간의 국명 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친구와 배우자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바꿀 수 없다. 지리적 조건이 부여하는 숙명이다. 인접국과의 역사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켜켜이 쌓인 갈등을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듯이 단칼에 해결할 수도 없다. 나라마다 역사 인식이 다르고 정치·외교·경제적 측면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 문제가 미래의 발전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실용적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국익을 위해 편협한 민족주의 대신 실용주의를 택한 양국 정치지도자와 국민의 비전,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