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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중국식 과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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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대붕(大鵬)은 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 상상의 새다. 9만 리면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다. 얼마나 큰지, 날개를 펴면 구름과 같다고 했다. 태풍을 타고 비상하면 물결은 3000리나 튀는 데다 6개월을 날아야 한 번 쉰다니 크기도 역량도 쉽게 가늠이 가지 않는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에 이렇게 묘사된 대붕은 웅지와 큰 인물의 의미로도 쓰인다.

철학·사상서만이 아니다. 중국의 고전 문학에도 과장이 적지 않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은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근심 속에 긴 흰머리와 함께 덧없는 늙음을 한탄한 시, 추포가(秋浦歌)의 한 구절이다. 1장(丈)이 10자(尺)이니, 쪼잔하게 계산해보면 9㎞나 된다. 대표적인 중국식 과장으로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도 함께 인용되지만 삼천장의 백발에 비하면 애교다. 삼국지 서유기도 과장과 판타지 요소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읽겠나.

흔하디흔한 닭발 요리를 ‘봉황족(鳳凰足)’이라고 미화한 것에 이르면 중국식 과장은 단순히 외형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옛날 상서롭고 고귀한 존재의 상징으로 봉황을 창조해낸 것 못지않은 닭발의 과장이다.

최근 유력 서방 언론들과 기자회견을 한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 CEO(75)의 화법에도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엿보였다.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제조업체이자 중국 IT업계의 선두 기업을 이끄는 그는 “트럼프는 위대한 대통령”이라며 “중국과 미국 간 무역 분쟁에서 화웨이는 참깨씨에 불과하다”고 극도로 자세를 낮췄다.

미국과 서방의 그 동맹국들로부터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화웨이의 처지를 감안한다 해도 공개 발언으로는 과도한 저자세다. 일각에서는 ‘은둔의 경영자’ 런정페이의 인터뷰 자체가 현 상황을 화웨이가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화웨이 장비 속에 깨알만 한 비밀 스파이칩이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미국에서 제기된 뒤 이 회사가 겪는 수난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달 CFO 겸 부회장인 그의 딸이 캐나다에서 체포됐고, 유럽지사 직원은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검거되기도 했다.

청대 옹방강은 일흔여덟 때 참깨에 천하태평(天下泰平) 넉 자를 썼다고 전해지지만 그것도 중국식 과장인지 모른다. 연매출 1000억달러 이상에 직원은 17만 명이 넘는 글로벌 기업 CEO가 참깨에 비유하며 미국을 향해 읍소하는 게 진정 다급해서인지, 이것도 과장의 제스처인지….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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