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 3인의 북핵 진단과 해법
크리스토퍼 힐 “김정은, 비핵화보다 한·미동맹 약화에 더 관심”
“북한, 핵 폐기하겠다면 美와 비핵화 밑그림부터 합의해야"
“종전선언, 신중해야…평양·워싱턴에 연락사무소 설치는 좋은 아이디어”
로버트 아인혼 “북한, 경제발전 원하지만, 비핵화할 준비 안돼”
“북한, 영변외 핵 시설도 모두 신고해야…미국, ‘완전한 비핵화’ 전 중간단계로 북핵 능력 동결부터”
“2차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사전에 프로페셔널한 수준의 미팅 있어야”
로버트 갈루치 “북한 믿지 말고 검증해야”
“풍계리 폭파 진짜 비핵화 딜 아냐…영변 핵시설부터 폐기가 우선”
“북한 핵 목록 신고 전 종전선언도 대안”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17~19일(미 동부시간)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모양새다. 한국경제신문은 북핵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듣기 위해 과거 북핵 문제를 직접 다뤄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2018년 12월14일 대면 인터뷰),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2019년 1월9일), 크리스토퍼 힐 전 북핵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2019년 1월4일, 11일 전화 인터뷰)를 지난 한달간 차례로 인터뷰했다. 현 상황을 고려해 시간 역순으로 인터뷰를 요약했다. 인터뷰 전문은 한국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김정은의 신년사를 어떻게 봤나.
“(작년 신년사 이후) 1년간 비핵화에 진전이 없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본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비핵화를 안 하겠다는 증거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도 믿지 않는다.”
-북한 신년사엔 ‘더 많은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대목도 있다.
“김정은이 ‘비핵화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은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포함하는, 광의의 군축(협상) 차원에서 얘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은 ‘비핵화 전 제재 완화는 없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도 제재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미 대북정책특별대표)과 만나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대신 비건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도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처럼 책임있는 핵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거라고 본다.”
(힐 전 대표는 북한 신년사가 발표된 지난 1일 트위터에 “북한은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며 “그보다 한·미동맹 약화와 (한국에 대한)미국의 안전보장 제거를 포함하는 더 많은 대화, (미국의)더 많은 양보에 더 관심 있다”고 썼다.)
-4차 북·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우리에겐 중국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에 (미국과) 게임을 한 건 북한이라기보다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북한 문제를 미국이 독점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거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까.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준비가 잘 돼야 한다. 그런데 2차 정상회담 준비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북한의 비핵화 스케줄이나 계획이 없는 지금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왜 김정은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원하는지도 불명확하다.”
-구체적으로 무슨 준비를 해야하나.
“실무 미팅을 통해 정상회담의 윤곽을 미리 그려야 한다. 회담이 열리기 전에 정상회담의 결과를 알 수 있을 만큼 (실무단계에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에선 그런 준비가 없었다. 그래서 (싱가포르 회담은) 북한엔 도움이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겐 도움이 안 됐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단계별로 주고받는) ‘행동 대 행동’이라고 부를 만한 협상 원칙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엔 그게 없다. ‘북한이 모든 걸 다 할 때까지 미국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도 (제재를 완화해야 움직이겠다는 식으로) 똑같이 말하고 있다.”
-‘행동 대 행동’ 계획이 왜 중요한가.
“어느 한쪽이 모든 걸 다 해야 우리도 뭔가를 하겠다는 식의 협상이 제대로 진전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담은 리스트를 확보하는 동시에 (단계에 따라) 북한에 줄 수 있는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거부하면 미국도 그에 대한 상응조치를 거부해야 한다. 미국이 줄 수 있는 리스트엔 많은 것이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주한미군 관련 이슈는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종전선언도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란 걸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평양과 워싱턴DC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건 어떤가.
“(6자회담이 열리던) 2007년 1월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 측과 만났을 때 그 아이디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의 반응은 ‘사양한다. 우린 관심 없다’였다. 북한의 생각이 달라졌다면 그건 (연락사무소 설치는) 여전히 좋은 아이디어다.”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안은 어떻게 보나.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마음대로 골라선 안 된다. 협상이 제대로 되려면 먼저 북한이 전체 핵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그걸 보고 미국이 북한이 뭘 해야 할지 요구하고, 북한도 그에 대한 대가를 제시하는 식으로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우린 이걸 닫겠다, 저걸 닫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협상하려는 차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뭔가를 자발적으로 폐쇄하겠다고 할 땐 진정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럼 비핵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뭔가.
“비핵화 레이아웃을 그리고 이에 대해 서로 합의하는 일이다. 예컨대 첫 단계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한다면, 두 번째 단계로 국제사찰단의 방북을 허용하고, 세 번째로 전체 핵 프로그램 목록을 받고, 다음 단계로 국제적 감독 아래 북한의 핵무기 제조물질을 확보해 해외로 반출하는 계획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논의를 북한과 해본 적이 없는 게 문제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
-김정은의 4차 방중(訪中)을 어떻게 보나.
“올해 신년사에서 얘기한대로 ‘미국이 유연하게 나오지 않으면 다른 옵션이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길이 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미국과 손잡는 대신 중국과 결속을 강화하는 옵션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 편’이란 걸 확실히 하면서 중국으로하여금 제재완화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하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더 대화할 용의가 있다’와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두가지 메시지를 내놨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나.
“김정은은 미국과 대화하고 합의하길 원하지만, (어디까지나)자기 방식대로 하는걸 선호한다. 제재 완화와 군사적 위협 완화를 원하지만 핵무기는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김정은은 정말로 북한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기 위해)제재 완화와 함께 한국,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거나 줄일 준비는 돼 있지만, (그렇다고)핵무기를 포기할 준비는 안돼 있다고 본다.”
-미국이 그 걸(북한 핵 보유를) 받아들일까.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고 분명히 밝혀왔다. 부분적인 딜(거래)은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나 차기 행정부가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는 과도기적 합의를 받아들일거냐다.”
-과도기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나.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하고 신속한 비핵화만 고집하다간 아무런 합의도 못할 거다. 완전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여야하지만, 그것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걸 깨달아야 한다. 우선 과도기적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 ”
-북한의 핵 능력을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하나.
“핵무기 원료물질 생산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는게 첫 단계다.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그 걸 막는다면 북한이 보유할 수 있는 핵무기(규모)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런 제한은 검증가능해야하며 북한은 핵 원료물질뿐 아니라 모든 핵시설을 신고해야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을 위한 사찰을 허용한다면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신고하면 믿을 수 있다고 보나.
“믿을 순 없다. (그래서)검증 수단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 순 없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훈련 중단)결정 방식은 잘못됐다. 김정은과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즉흥적으로 그렇게 결정해버렸다. 한국과 미리 상의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의 보좌관들도 깜짝 놀랐다. 이건 좋은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다. 다만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군사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핵 보유국이 되고 싶어한다는 지적이 있다.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선 핵 보유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여겨지는 것이고 인도, 이스라엘도 그렇다. 어떤 나라도 파키스탄이 핵을 가졌다고 제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북한도 그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일본도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NPT를 위반한게 아니었다. 그들은 NPT에 가입한 적이 없다. 그들이 핵을 가진건 유감이지만 핵을 얻기위해 전 세계를 속인건 아니었다. 반면 북한은 전 세계를 속일 목적으로 (과거)NPT에 가입했다. 그래서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건 정당화될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 전에는 제재완화를 안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약간 애매하다. 처음엔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만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제재완화를 위해선 (비핵화에)커다란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북한 비핵화에 중대한 진전이 있다면 미국도 제재완화를 시작할 걸로 본다. ”
-뭐가 중대한 진전이 될 수 있나.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IAEA가 그걸 검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보유한 전체 핵무기 중)핵무기 10개 가량을 (미국에)넘기는 거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하길 바란다. ‘완전한 비핵화 전에는 어떤 제재완화도 없다’고 고집하는건 비현실적이다. ”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안은 어떻게 보나.
“쓸모 있는 제스처지만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제안은 북한이 영변 말고 다른 중요한 핵시설을 갖고 있다는걸 말한다. 북한이 영변 외에 의지할 핵시설이 없다면 그런 제안을 안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다른 핵시설을 파악하고 있지 않나.
“미국은 북한의 다른 핵시설에 대해 일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이 (직접)모든 핵시설을 신고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신고한 리스트를 받아서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와 대조한뒤 만약 차이가 있다면 추가 신고를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까.
“만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원하는건 미리 충분한 준비를 했을 때만 만나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문제는 진짜 사전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한 일반론에만 합의했다. 프로페셔널한 수준의 미팅이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북한은 그걸 거부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대북정책 특별대표)이 북한측 카운터파트(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북한은 계속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매우 불운한거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은 보다 낮은 레벨에서 진지한 준비를 거친뒤 해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2차 정상회담이 열리면 실패할 것으로 보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가 아는건 김정은은 잘 준비돼 있을거란 점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잘 준비돼 있을거냐다. ”
-북한은 ‘톱 다운식’ 대화를 선호하고 있다. 좋은 방식이라고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 중 한가지 긍정적인 건 최고위급에서 북한과 협상할 준비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로 단 한 명의 결정권자가 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맞다. 다만 (2차)정상회담이 진짜 진전을 이루려면 실무협상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게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
-한·미 양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미국은 (협상에서)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미국이 상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북한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미국이 깨달아야 한다. 한국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김정은은 ‘이미 많은걸 했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김정은이 취한 조취는 그리 대단한게 아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걸 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외에 다른 핵 시설을 신고해야 한다. 모든 핵무기의 숫자와 위치까지 신고하는건 나중에 하더라도 핵 물질을 어디서 생산하는지 신고하면 (비핵화 협상 진전에)도움이 될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수 있다고 보나.
“장담할 순 없지만 미국이 북한 입장에 좀 더 다가갈 걸로 본다. ‘행동 대 행동’이라 부르든 ‘상호주의’라 부르든 북한은 과거처럼 주고받기식 협상 틀을 원한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화가 진전되기 어려울거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모든 걸 다 내놓아야 뭔가를 주겠다’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다만 미국의 행보가 제재 완화일 필요는 없다.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제재 완화나 종전 선언, 궁극적으로 수교로 이어질 수 있는 연락사무소 설치가 그런 예다. 미국은 제재 완화 없이도 이런 ‘정치적 조치’를 통해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 카드 게임으로 치면 미국은 쓸 수 있는 카드가 많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겉도는 이유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 책임이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안 하고, 미국은 군사옵션을 쓰지 않는 현재 상황에 둘 다 안주하고 있는거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가 실제 진전된 건 없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갱도 파괴, 탄도미사일(발사 중단)은 진짜 딜(거래)이 아니다.”
-뭐가 진짜 ‘딜’인가.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모두 없애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빅딜이다. 북한은 (9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때) 한국을 통해 이 딜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우선 영변 핵시설 폐기 후 다음 단계로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없애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신뢰하나.
“물론 신뢰하지 않는다. 미국은 확실히 북한을 믿지 않는다. 북한도 미국을 믿지 않을거다. 문제는 ‘서로 믿지 못하는 두 사람이 거래를 할 수 있느냐’인데,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미국은 과거 소련을 믿지 않았지만 소련과 여러 가지 거래를 했다. 검증할 수 있고, 투명성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면 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했다. 틀렸다. ‘(북한 문제는) 믿지 마라. 그러니 검증하라(Don’t trust therefore verify)’가 답이다.”
-김정은은 ‘핵무기는 나라를 지키는 보검’이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나 리비아 카다피 정권 전복을 얘기할 때 농담하는 건 아닐거다. 하지만 김정은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도 있다. 체제보장만 된다면 정상 국가처럼 무역과 상업활동을 하고 외국 투자도 받고 경제개발도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도 아버지, 할아버지 때보다 높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얻을 게 많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북한을 무조건 봉쇄하기보다 대화 노력을 할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북핵 폐기를 할 수 있느냐는 시도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북한이 이른바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파키스탄은 우리에겐 ‘가장 나쁜 악몽’이다. 만약 (비핵화 협상이) 모두 엉망으로 끝나고 북한이 다시 안보를 우려하게 된다면 그들도 파키스탄 모델을 생각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화 진전을 위해 ‘북한이 핵무기 목록을 제출하기 전 종전선언 수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맞는 얘기라고 본다.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목록 제출을 원하는 건 (철저한) 비핵화를 위한거다. 하지만 협상이 실패하면 그건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타깃 리스트’가 된다. 혹은 북한이 거짓으로 목록을 낼 수도 있다. 과거 걸프전이 끝난 뒤 무장해제를 위해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핵무기 목록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이라크가 낸 건 전부 조작된 내용이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