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KT 수사 1년여 만에 종결
돈 받은 의원들 혐의 못 밝혀
[ 이현진 기자 ] 경찰이 황창규 KT 회장(사진) 등 일부 전·현직 임원을 정치권 ‘쪼개기 후원’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고 17일 발표했다. 불법 후원금을 받은 99명의 전·현직 국회의원들은 혐의 입증이 어렵다며 기소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1년여에 걸쳐 본사 압수수색과 황 회장에 대한 두 차례 구속영장 신청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인 점을 감안할 때 초라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황 회장 등 7명과 KT 법인은 2014년부터 4년간 총 4억379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19·20대 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경찰은 KT가 1인당 후원 한도(500만원)를 피하기 위해 ‘쪼개기’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임직원은 모두 29명으로 대관업무를 맡은 일부 직원은 가족이나 지인 명의까지 빌려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식으로 의원들에게 30만~1400만원 안팎의 후원금이 전달됐다. 대부분이 KT가 주주로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설립과 관련한 사안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 통신 관련 각종 예산과 입법 등을 담당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이다.
경찰은 후원금을 받은 99개 의원 보좌관과 회계책임자 등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불법 정치자금임을 알면서도 후원금을 받았다면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의원실 관계자들은 대부분 경찰 조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후원회 계좌로 입금돼 KT 법인자금인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앞서 지난해 6월 황 회장 등 피의자 4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후원금을 받은 쪽도 조사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보강수사를 거쳐 같은 해 9월 영장을 재신청했지만 검찰은 또다시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일각에선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검·경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거나 경찰이 정권의 ‘대기업 길들이기’를 위해 무리한 수사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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