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옛것과 새것의 바람직한 조화…뉴욕을 예찬하라
뮤지션 놀이터 워싱턴 스퀘어 파크…스트리트 패션의 메카 소호
낭만적 산책길 그리니치 빌리지
존 레넌 "이곳에서 태어났어야"
빈티지한 분위기의 브루클린
뉴욕 청춘들 몰려 활기 넘쳐
인생 사진은 덤보에서 '찰칵'
명불허전이다. 자유롭고 역동적이다. 화려한 간판에도, 높이 뻗은 마천루에도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고즈넉한 골목마다 서정과 우수가 배어 있다. 역사와 품격을 아는 사람들의 여유도 전해진다. 수만 가지의 다양한 얼굴, 여행자들은 그래서 환호한다. 예찬하기에 마땅한 뉴욕이다.
이토록 여행자를 매료시키는 도시가 얼마나 될까? 비교적 안전한 치안, 편리한 교통, 볼 것 많고, 먹을 곳 많고, 수많은 이야기가 쌓인 이곳을 매년 수천만 명의 여행자가 다녀간다. 들를 때마다 더욱 진화한 모습에 놀라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다녀간 이들이 다시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변화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키고 보존할 것은 고집스럽게 내버려 둔다. 옛것과 새것의 바람직한 조화는 다양한 면에서 재미를 보장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하든 그 니즈를 틀림없이 만족시킨다. 그리고 이는 뉴욕의 여기저기에서 목격되는 ‘아이 러브 뉴욕’, 고작 며칠만으로도 이 말에 순순히 동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글·사진 임성훈 여행작가 shlim1219@naver.com
뉴욕에서 즐기는 낭만적인 산책
아름다운 뉴욕, 걸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걸음마다 세월과 낭만이 밟힌다. 그리니치 빌리지가 그렇다. 멋진 철제 계단과 난간, 브라운 스톤으로 지어진 타운하우스가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분위기는 클래식하고 곱다. 당대를 사로잡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그리니치 빌리지의 이런 모습을 흠모하며 몰려들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은 “이곳에서 태어났어야 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아티스트들의 근거지였던 동네답게 문학, 영화, 음악 등의 배경지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 가운데 맥두걸 스트리트가 특히 마음을 끈다. 미국 문학가 잭 케루악의 시 ‘맥두걸 스트리트 블루스’에도 등장하는 이곳, 유서 깊은 카페와 레스토랑, 태번(선술집)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119번지에 있는 카페 레지오는 미국에서 최초로 카푸치노를 셀링한 가게로 이름 높다. 영화 ‘대부 2’에도 등장했고 존 F 케네디가 대선 후보였을 당시 이 가게 앞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이탈리아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인터뷰 도중 ‘미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고 한 말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음악 마니아라면 115번지에 있는 노란 간판의 ‘카페 와(Caf WHA?)’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뮤직 클럽이자 소극장으로 우리나라의 ‘쎄시봉’을 연상케 한다. 지미 헨드릭스, 벨벳언더그라운드, 피터 폴&메리, 쿨앤더갱, 브루스 스프링스틴, 우디 앨런, 빌 코스비 등 그 면면도 화려한 인사들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특히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밥 딜런은 이곳에서의 공연을 계기로 뉴욕음악계에 데뷔했다. 카페 와가 음악인의 공간이었다면 113번지의 미네타 태번은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유진 오닐 같은 대문호들의 아지트였다. 유명 매거진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이 건물의 지하실에서 탄생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 ‘주류 밀매점’으로 출발한 이력 또한 재미있다.
뉴욕의 개선문을 가진 공원, 워싱턴 스퀘어 파크
그리니치 빌리지의 중앙에 있어 산책으로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에 알맞은 공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보고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전투적인 여행자에게도 이곳은 만족스럽다. 공원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워싱턴 아치(Washington Arch) 때문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흡사한 자태를 지녀 뉴욕의 개선문이라고 불린다. 조지 워싱턴 취임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목재를 사용해 올렸지만 1890~1895년을 거치며 대리석과 콘크리트로 재탄생했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젊은 뮤지션의 공연도 자주 목격된다. 그래서일까? 많은 영화 속에서 이곳은 늘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했다. 커스틴 쉐리단 감독의 ‘어거스트 러쉬’에서 주인공 어거스트가 아버지와 기타 합주를 해보는 장면, ‘비긴 어게인’의 그들이 야외에서 녹음하는 장면도 바로 여기에서 촬영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공원 인근에 있는 워싱턴 뮤즈(Washington Mews)로 향해 볼 일이다. 이곳은 독일문화원과 아일랜드문화원 사이에 난 작은 골목으로 이층 높이의 파스텔 색조 가옥들이 운치 있게 몰려 있다. 18세기, 이 일대가 농장지대였던 시절 마구간을 개조해 지은 집들이다. 현재는 뉴욕대학교의 관사로 사용되고 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감각적인 도보여행지 소호
소호는 뉴욕에서 가장 트렌디한 거리이자 스트리트 패션의 메카다. 뉴욕 멋쟁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스타일에 눈이 즐겁다. 하지만 주눅들 필요는 없다.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티만으로도 유니크한 화보가 완성되는 곳, 그게 바로 소호니까. 1990년대 소비 중심지로 변신하기 전만 해도 이곳은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적 공간이었다. 산책 도중 갤러리들이 종종 눈에 밟히는 이유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지어진 캐스트 아이언 건물들에서도 눈을 뗄 수 없다. 외벽마다 비상계단을 매단 이 중후한 철제 건물들의 1층은 대부분 상업매장이다. 여기서 루이비통, 프라다,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의 슈퍼 브랜드와 로컬들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빈티지 패션이 평등하게 경쟁한다. 그 때문에 가격은 천차만별,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템도 셀 수 없다.
상전벽해란 첼시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항만 시설과 철도, 공장이 건설되며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 서쪽 지역과 도축업이 활발해 미트패킹이라 불리던 북쪽 지역이 1960년대 말을 기점으로 쇠락하면서 첼시는 슬럼화 현상을 겪는다. 그러다 1990년대 지역 개발정책에 힘입어 거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지금은 뉴욕의 가장 패셔너블한 지역의 하나로 탈바꿈했다. 이 놀라운 변신이 인상적인 건 지킬 것은 지켜가며 바꿨다는 데 있다. 350여 개에 달하는 갤러리가 포진한 ‘첼시 갤러리 거리’는 항구 주변의 커다란 창고에서 시작했으며,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첼시 마켓’도 공장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그런 경험은 다시 첼시 하이라인파크로 이어졌다.
빌딩 사이에 마련된 고가도로 형태의 산책로인 이곳은 뉴요커들도 자주 찾는 명소다. 탄생한 사연은 이렇다. 1980년을 기점으로 첼시 지역을 오가던 기차의 운행이 중단돼 철로가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뉴욕시는 이를 철거하는 대신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철로의 흔적은 그대로 두고 주변에 꽃과 나무, 예술작품과 함께 허드슨 강변 전망대, 첼시 초원, 10번가 전망대, 23 거리 계단공원 등의 멋진 포인트를 배치해 독특한 공원을 완성했다.
세계 최고의 번화가, 타임스 스퀘어
타임스 스퀘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번화가다. 현란한 네온사인과 광고판이 불야성을 이루고 수많은 고층빌딩이 숲을 만든 곳. 뉴욕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이름이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묘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정확하게 말하면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42~47번가 사이의 거리가 이에 해당하고, 과거 뉴욕타임스 본사가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있었던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주변엔 장난감 매장, 초콜릿 가게, 패밀리 레스토랑, 기념품 숍, 유구한 전통의 호텔 등 남녀노소 누구나 만족하는 시설들로 빼곡하다. 그 가운데 타임스 스퀘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더피 스퀘어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욕에 온 누구라도 꼭 한 번은 들른다는 빨간색 유리 계단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타임스 스퀘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 흔히 떠올리는 현대적이고 화려한 이미지의 뉴욕이 깨알같이 펼쳐진다.
타임스 스퀘어 거리에서 무수한 관광객에게 염증을 느꼈다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통해 치유받는 것이 현명하다. 사실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동북~서남쪽을 사선으로 관통하는 길의 이름이다. 총 길이만 21㎞에 달해 멀게는 브롱크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 길의 일부에 속하는 타임스 스퀘어 부근에 극장들이 몰리면서 뮤지컬의 대명사가 됐다.
뉴욕의 역사가 응집된 브루클린
화려한 맨해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빈티지한 멋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맨해튼의 동남쪽, 이스트강을 건너면 바로 브루클린이다. 30년 전만 해도 외지인의 발길조차 낯설었던 투박한 공간. 윌리엄스버그와 덤보지역을 중심으로 뉴욕의 청춘들이 몰려들며 활기차고 힙한 동네로 뜨고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한다. 19세기, 당대 최고의 토목공사로 화제를 모았다. 1869년 완공 때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이자 강철 케이블을 사용한 최초의 현수교로 이름을 날렸다. 매력적인 외관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했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도보나 자전거로 다리를 건넌다. 왼편은 자전거 전용도로, 오른편은 보행자 전용도로지만 원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라 구분은 대개 무의미해진다. 맨해튼 방향으로부터 다리를 건넜다면 끝자락에는 아름다운 강변 공원인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가 기다린다. 총 길이 2.1㎞의 산책로 주변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멋져서 로컬들에게는 휴식처로, 이방인들에게는 기념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인생 샷은 덤보와 월리엄스버그
덤보(Dumbo)는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의 약자로 ‘맨해튼 브리지 교각 아래’라는 의미가 있다. 한때는 후미지고 어둑한 분위기였지만 1970년대부터 브루클린 미술계의 거점이 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적은 비용으로 널찍한 작업공간을 찾던 돈 없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필요에 맞는 벽돌공장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해 필수 방문코스가 됐다. 팁을 더하자면 덤보는 뉴욕을 대표하는 포토 스폿 중 하나다. 먼저 빈티지한 벽돌 건물의 가운데에 맨해튼 브리지를 배치한다. 그리고 맨해튼 브리지의 교각 사이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넣는다. 요령은 바로 그거다.
그래피티, 젊음, 힙스터, 윌리엄스버그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빈티지풍 젊은이들이 중심가인 베드퍼드를 누비고 평범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와 클럽, 보세 옷 가게들이 골목마다 늘어선 모습은 홍대나 가로수길을 떠올리게 해 낯설지 않다.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이 동네와 연결된다. 본래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뉴욕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몰려들며 문화 해방구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뉴욕=글·사진 임성훈 여행작가 shlim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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