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지렛대' 활용하는 메이 총리 "시간은 내 편"
야당 "노딜 예산 마음대로 못써" 제동....노딜 우려 속 '브렉시트 연기론'도 솔솔
“메이딜 또는 노딜, 아니면 노브렉시트”
오는 3월 29일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있는 영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브렉시트가 어떻게 될 지를 놓고 누구와도 내기가 가능할 만큼 영국인들의 브렉시트 전망은 제각각이다. 최소한 두세 시간용 술안주는 될 정도로 각자 주장의 근거 역시 각양각색이다. 그만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다만 어떤 시나리오를 쓰든 삼지선다로 축약된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EU와 합의한 ‘메이딜’로 관철되는 게 일번이다. 두번째로 야당인 노동당이 주장하는 조기총선이나 브렉시트 재투표를 하기 위해 브렉시트 시행일(3월29일)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 경우의 수는 아무런 합의 없이 결별하는 ‘노딜’이다.
상처 입은 메이의 ‘노딜 지렛대’
영국의 어느 신문, 어떤 방송에서든 브렉시트 관련 기사를 쓰면 항상 따라오는 표현은 ‘노딜 우려’다. 맨 앞에 나오느냐, 중간에 있느냐 제목의 위치만 다를 뿐이다.
실제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동네북이다. 하드 브렉시트파에겐 “영국의 자율성이 훼손된 굴욕적 합의”라고 비판받고 브렉시트 반대파에겐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브렉시트를 철회하라”고 압박을 받고 있다. 영국 정부나 국민들 모두 EU와 떨어져 살 준비가 안돼 있어도 너무 안돼있는 게 사실이다. 노딜 우려는 이같은 불안감을 먹고 더욱 커지고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노딜만은 피하기를 바라고 있다. 메이 정부는 이런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방법은 양자택일이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건 노딜과 합의안(메이딜) 둘 밖에 없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방법이다. 종국에 가서는 최악(노딜)을 피하기 위해 차악(메이딜)을 택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메이 정부는 브렉시트 시행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먹혀들 것으로 예상해왔다. 영국 의회에서 메이딜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노동당이 노딜을 자초했다”는 야당 책임론도 커질 것으로 기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이 반격을 가했다. 메이의 ‘노딜 지렛대’를 꺾기 위해 ‘노딜 방패’를 꺼내들었다. 지난 8일 하원에서 이베트 쿠퍼 노동당 의원 등이 상정한 재정법 수정안이 찬성 303표 대 반대 296표로 통과된 게 그것이다. 의회 동의없이 메이 정부가 ‘노딜’ 준비 예산을 못쓰도록 하는 내용이다. 노딜 가능성을 차단하고 노동당은 노딜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심산이다. 만에 하나 노딜이 현실화해도 노동당 책임이 아니라 메이 정부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노동당의 의도도 숨어 있다.
“웨스터민스터 데이를 주목하라”
중요한 분수령은 오는 15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영국 하원의 투표다. 현재 런던 웨스터민스터 분위기로는 가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의회는 합의안이 부결되면 정부가 3일 내 ‘플랜B’를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도 찬성 308표 대 반대 297표로 통과시켜 놓은 상황이다. 이 법안에 따라 메이 총리는 오는 21일 플랜B를 들고 나와야 한다. 21일에도 부결되면 플랜 C가 나오고 이후 플랜 D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 총리는 보수당 하드브렉시트파를 끌어안는 전략에서 노동당 이탈표를 노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제 “메이 정부가 노동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동 및 환경 보호 강화 법안을 지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메이 총리는 생각보다 근소한 차로 반대파를 추격하고 있다. 노딜 재정 사용 금지법안이 303대 296으로 가결된 것이나 플랜B 요구 법안이 308대 297로 통과된 것이 박빙의 승부를 보여준다. 메이 총리가 반대파의 4~6표만 더 가져오면 메이 총리 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또 중요한 것은 의회에서 양측이 기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변함없이 시간은 흘러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3월 29일이 다가올 수록 반대파 중 일부가 메이 정부 안으로 선회할 공산이 그 반대 가능성보다 클 수밖에 없다.
고개 드는 브렉시트 철회 가능성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다. 메이딜이 끝까지 가결되지 못하면 브렉시트를 철회하거나 브렉시트 시작 시점을 늦추는 경우의 수다.
다만 넘어야할 산이 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를 EU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 있지만 이는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 국민투표의 뜻을 뒤집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브렉시트 철회 결정은 의회나 노동당이 아닌 메이 정부만 할 수 있다. 그런 부담을 브렉시트에 찬성해온 메이 총리나 보수당이 질 확률은 높지 않다.
브렉시트 시행 자체를 연기하려면 영국을 뺀 EU 회원국 27개국이 모두 승인해야 한다.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연기할 수 없다. 다만 오는 5월 있을 차기 EU 의회 선거 때까지 연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그 때까지 연기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다. 영국에서 조기 총선을 하든 제 2 국민투표를 하려면 최소한 6개월, 평균 1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5월 연기론’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기 총선이나 제 2국민투표를 하려면 영국 정부는 일단 모든 EU 회원국의 승인을 얻어 차기 EU 집행부가 들어서는 올 하반기 이후로 브렉시트 시행을 연기하고 그 뒤에 다시 원점에서 담판을 벌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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