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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용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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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부처별 소통·홍보창구를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맞닿은 인식이다.

야당은 “입맛에 안 맞는 뉴스를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으로 차단하려는 인식이 우려스럽다”며 반발하고 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안 좋은데 정부의 경제 인식은 현실을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 정권에 우호적이라는 시민단체마저 “정부의 가짜뉴스 대책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미 가짜뉴스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정부가 직접 허위 여부를 판단하고 정보 유통을 막는다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허위 정보’로 단정하고 처벌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것을 정치적 시각으로만 재단하면 청맹과니가 되기 쉽다. 본질을 왜곡하는 용어를 동원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정부가 내세운 ‘위험의 외주화’도 잘못된 개념이다. 업계는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위험관리 업무의 전문화’로 보는 게 맞다고 한다. 위험한 업무는 원청업체보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은 업체가 더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어서다. 오죽하면 “고층빌딩 외벽 청소를 훈련받은 전문인력이 아니라 빌딩 소유주가 직접 고용한 인력이 하면 더 안전한가”라는 한탄이 나왔을까.

툭하면 터지는 ‘사내유보금 논란’도 마찬가지다. 집권당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경제 장관을 지낸 의원까지 ‘사내유보금=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 둔 현금’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현금이 아닌 공장, 기계설비, 재고, 지식재산권 형태로 존재한다. 사내유보금 대신 ‘창출자본’이나 ‘세후재투자자본’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게 옳다

‘영리병원’이라는 말 또한 왜곡된 용어다. 외부 투자를 받아 수익을 나눌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식 용어다. 이를 ‘영리’ 대 ‘비영리’의 이분법적 틀에 가두는 바람에 혼란이 왔다.

사회학자들은 잘못된 용어가 ‘인지적 오류’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상대와 나를 편가르는 흑백논리, 근거 없는 감정으로 결론을 단정하는 감정적 추리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왜곡된 사고나 맹목적인 확신, 보고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도 이런 데서 비롯된다. 용어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으면 사고의 각도가 비뚤어진다. 분석과 판단력도 흐트러진다. 이래서는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올바른 사고는 올바른 용어에서 출발한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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