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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진화하는 은행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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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노르웨이의 롱위에아르뷔엔이라는 곳이 며칠 전 지구촌 매스컴을 탔다. ‘지구상 최북단 도시’로 북극곰이 주민보다 더 많다는 인구 1800여 명의 이 소도시에서 발생한 무장 은행강도 사건 때문이었다. 섭씨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에 도주로는 작은 공항뿐인 곳에서 홀로 은행을 습격했다면 필시 ‘아마추어’였을 것이다.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무모한 은행강도범”이라는 트위터 촌평은 ‘세계 은행강도 역사상… ’으로 고쳐 써도 되겠다.

은행강도, 은행도둑은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전통 서부극부터 최신작까지 은행강도를 빼면 할리우드 영화도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장총과 역마차에서 복면·권총시대를 거쳐 새까만 스파이더맨 차림에 고성능 컴퓨터로 장비가 바뀌었을 뿐 은행강도 영화의 ‘스릴(긴장) 마케팅’은 여전하다. 은행강도 역시 그 나름대로 진화하는 게 분명하다.

보이스피싱이 문자피싱·메신저피싱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은행강도가 광범위하게 변신해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카톡피싱·페북피싱은 워낙 그럴듯해 피해자가 늘었다. 친지·친구 사칭 정도는 구식이다. 택배문자 무료쿠폰 등을 미끼로 금융정보를 빼앗아가고(스미싱), PC에 악성코드를 심어 소액결제(파밍)도 시도한다. 예금자가 은행창구를 찾을 이유가 줄어들듯 ‘돈 도둑’ ‘돈 강도’도 굳이 은행으로 갈 필요가 없어진 시대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올 들어 ‘피싱’계통 금융범죄는 5만4973건(10월 말)에 달한다. 피해금액도 3340억원이나 된다. ‘시골 노인들’이나 당한다는 것도 옛말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시스템의 발전에 맞춰 해킹 기술도 함께 진화 중이다. ‘IT 강국’ 한국의 또 다른 이면이다.

가상화폐 해킹 도난 사건에 대한 엊그제 판결을 보면 최상급 보안을 내세워온 블록체인 기술에도 허점이 있고 이로 인한 논쟁점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인 빗썸에서 해킹당한 개인 피해에 대해 법원은 ‘거래소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가상화폐는 ‘전자화폐’가 아니며, 거래소도 금융회사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최근 3년간 가상화폐거래소에서 드러난 해킹만 7차례 있었고 11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블록체인도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라는 경고 같다. 블록체인까지 뚫린 것이나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의 복잡한 해킹 도난 사건을 보면 은행강도도 급은 천차만별이다.

인터넷뱅킹 폰뱅킹에 카톡은행까지 영업 중이니 금융거래가 편하긴 편해졌다. 문제는 도난·강탈·사기의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고, 일상화됐다는 사실이다. 안전만 보면 차라리 현금이다. 인터넷과 사이버 기반의 편리한 ‘하이테크(high tech)’ 시대에도 현금과 실물통장을 놓지 않는 ‘로테크(low tech)’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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