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정부기관이나 공직자가 외국인 투자 기업에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외상(외국기업)투자법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또 외국 기업의 특허를 침해하면 배상액 한도를 지금의 다섯 배로 늘리는 특허법 개정안도 심의를 시작했습니다. 다음달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미국의 요구에 성의를 보여주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 정부에 기술 이전 강요 금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줄기차게 압박해왔습니다.
2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전날부터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7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외상투자법 초안과 특허법 개정안을 심의합니다.
외상투자법 초안엔 미국이 요구해온 외국기업 권리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중국 기업과 외자 기업의 자발적인 기술 협력을 장려하고 외자 기업이 투자하는 과정에서 기술 협력 조건은 당사자들이 정하도록 했습니다. 행정기관이나 정부 공직자가 기술 이전을 강제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또 정부가 시장 진입 장벽을 설치하거나 퇴출 조건을 만드는 것도 허용하지 않기로 했는데요. 국가이익이나 공공이익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정책을 바꿀 수 있지만, 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고 외자 기업에 공정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환경보호 등을 위해 도심에 있는 외자 기업의 공장을 강제 철수시키거나 이전시키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함께 네거티브리스트(금지 항목) 이외의 사업에 대해선 중국 기업과 외자 기업에 모두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고 중국 정부가 기업 발전을 위해 제공하는 각종 혜택은 외자 기업에도 동등하게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첨단기술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내세워 중국 기업에만 보조금 지급 등 혜택을 준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허법 개정안 초안에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배상액을 지금보다 다섯 배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현재 배상액을 산정하기 힘들 경우 법원이 임의로 1만~100만위안(163만~1억6300만원)의 배상액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10만~500만위안(1630만~8억1500만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합니다.
또 최근 ‘짝퉁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온라인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기로 했는데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짝퉁 상품이 오가거나 동영상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콘텐츠 복제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외상투자법의 핵심은 기술 협력의 조건은 쌍방의 합의로 결정되며 행정수단으로는 강제하는 않는다는 것인데요. 중국 정부는 기존에도 어디까지나 기술 이전은 상거래의 일환으로 외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자발적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지 정부 차원에서 강요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는 “이번 법안은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다”며 “법안에 들어있는 ‘협력’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강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