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채지형의 구석구석 아시아 (1) 네팔 포카라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 네팔 제1의 도시는 카트만두지만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행지는 단연 포카라다. 힘들게 산에 오르지 않아도 히말라야를 만날 수 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얀 설산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특별한 히말라야를 만나고 싶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면 된다. 호숫가 위로 다울라기리부터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로 이어지는 장엄한 설산이 매혹적인 반영을 그려낸다. 바라보기만 해도 평화가 찾아들고 방전된 에너지가 충전을 시작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펼쳐진 히말라야. 산을 좋아하든 아니든 포카라와 금세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매혹적인 히말라야로의 초대
‘포카라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보름간 살아보기.’
버킷리스트 첫 줄을 차지한 바램이었다. 포카라에 가기 전에는 포카라의 매력을 몰랐다. 트레킹을 위해 들른 도시일 뿐이었다. 첫 포카라 여행 때, 딱 하루 머물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때 볼펜을 들고 버킷리스트에 한 줄 추가했다. 포카라에 꼭 다시 와서 적어도 보름은 게으르게 보내겠다는 희망사항이었다.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했던가. 7년 만인 올해 결국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웠다.
포카라(Pokhara)는 네팔 최고의 휴양도시이자 안나푸르나의 관문이다. 세계에서 몰려든 각양각색 여행자가 거리를 활보하지만, 외국인에게만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네팔 현지인도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네팔 넘버원 여행지다. 1960년대만 해도 포카라는 걸어서만 닿을 수 있는 오지 중 오지였다. 도로가 놓이면서 교통이 나아지고, 매혹적인 히말라야 소문을 들은 여행자가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는 히피들의 성지처럼 여겨졌으나 지금은 사라진 히피의 자리를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채우고 있다.
포카라에 오는 대부분 여행자는 트레킹을 위해 포카라를 찾는다. 짧게는 당일 트레킹부터 길게는 수십 일에 걸친 트레킹까지, 포카라에서 출발하는 트레킹 코스는 수십 가지다. 여러 코스 중 히말라야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3박4일 푼힐 코스와 1주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가 특히 인기다. 트레커들은 설렘을 품고 포카라에서 출발해 자신감을 안고 포카라로 돌아온다. 자신과 싸움을 마치고 온 이들을 포카라는 엄마처럼 따스하게 안아준다. 힘든 시절을 겪어야 고마움을 아는 법. 춥고 배고픈 산행을 경험하고 내려온 트레커들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히말라야에 고개를 숙인다.
고요한 호숫가 마을, 포카라
포카라는 네팔의 제2의 도시지만 자그마한 마을처럼 포근하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식당도 옹기종기 모여 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닐 수 있다. 포카라가 편안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호수 때문이다. 포카라는 ‘호수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에 베그나스, 마이디, 디팡 등 여러 호수가 있다. 포카라라는 지명도 호수를 뜻하는 네팔어 ‘포카리’에서 나왔다.
여러 호수 중에서 최고는 페와호수(Phewa Tal)다. 해발 784m 지점에 자리한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포카라의 대표 아이콘이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호수를 만들었다. 페와호수가 다른 호수와 다른 점은 히말라야를 호수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에 비친 새하얀 설산 그림자는 포카라 기념엽서의 단골 모델이다. 눈앞에 있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풍광이다. 새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 사이에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진 히말라야는 감탄사를 끝없이 내뱉게 만든다. 더 없이 평화롭다. 소설가 박완서 씨도 네팔여행기를 담은 책 ‘모독’에서 “포카라에서는 장엄한 설산이 마치 포카라를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가깝게 볼 수가 있다. 포카라에서 본 설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페와호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캠핑용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호수를 감상하는 것이다. 황홀한 설산 그림자도, 느긋한 시간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선물이다. 포카라를 그리워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십중팔구 페와호수 때문이다.
호수를 좀 더 가까이 경험하고 싶다면 뱃놀이도 할 수 있다. 호숫가에 알록달록한 나무배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를 젓다보면 어느덧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 든다.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네팔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해 14개의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중 8개가 몰려 있다. 포카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봉우리인 다울라기리(8169m)와 안나푸르나(8091m), 마나슬루(8156m)도 8개 안에 속해 있다. 8000m급 고봉에 속하진 않지만 포카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봉우리가 마차푸차레다. 높이는 6998m로, 물고기 꼬리처럼 생겼다. 네팔어로 마차는 물고기, 푸차레는 꼬리를 뜻한다. 물고기꼬리라는 의미 때문에 피시테일(fishtail)이라고 불린다. 마차푸차레는 주변 산과 달리 능선이 가파르고 가운데가 뾰족해 다른 봉우리와 확실하게 구분된다. 네팔 현지인들이 특히 신성시하는 산으로, 아직 정상을 밟은 이가 없는 미답의 산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등반도 금지돼 있다.
네팔 사람들의 마차푸차레에 대한 애정은 거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피시테일’이라는 이름의 숙소와 식당, 기념품 가게가 여러 개다. 물고기 꼬리 모양을 그려 넣은 티셔츠를 비롯해 기념품 소재로도 사랑받고 있다.
유서 깊은 호텔 이름도 피시테일 롯지(Fish Tail Lodge)다. 피시테일 롯지는 한쪽은 울창한 숲, 한쪽은 페와호수를 끼고 있어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유명인이 머물렀다. 페와호수에 비친 설산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소설가 박완서 씨의 맏딸이자 수필가인 호원숙
가는 수필집에서 “피시테일 롯지의 정원을 거닐면서 마치 천국의 정원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고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즐기기
포카라를 한없이 사랑스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날씨다. ‘히말라야의 겨울’을 생각하면 세상을 얼려버릴 만큼 추울 것 같지만 포카라는 전혀 다르다. 겨울에도 낮에는 티셔츠만 입고 다닐 정도다. 아열대 기후지만 보통 아열대 지역과 달리 고도가 높아 여름에는 25~35도로 그다지 덥지 않고,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다. 한겨울 포카라의 레이크사이드에는 햇살받이를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공기도 맑고 시야가 넓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구름이 끼는 날도 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뿌연 하늘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하늘에서 청명한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패러글라이딩이 인기다. 파노라믹 뷰와 청명한 공기가 주는 시원함은 마음속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를 탈탈 털어낸다. 포카라는 패러글라이딩하기 적당한 고도와 기류를 갖추고 있어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꼽힌다. 호수를 걷다가 산을 바라보면 새들처럼 하늘을 비행하는 패러글라이더 무리를 쉽게 볼 수 있다.
좀 더 독특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패러호킹(parahawking)도 있다. 패러호킹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새에 먹이를 주는 액티비티다. 영국인 스캇 메이슨 씨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새와 함께 날고 싶다는 생각에 패러호킹을 개발했다. 상처입거나 집 잃은 새를 데려와 키우고, 사람과 함께 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사랑곳에서 맞는 장엄한 일출
포카라는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천국 같은 곳이다. 패러글라이딩 외에 트레킹을 비롯해 래프팅, 집라인, 번지점프, 승마 등 아드레날린 넘치는 액티비티가 다양하다. 안나푸르나를 더욱 가까이 보고 싶다면, 경비행기 타기에, 오토바이 애호가라면 클래식 디자인이 돋보이는 로열 엔필드를 빌려 도로를 달리는 액티비티에 도전해보자.
여유롭게 포카라 주변 지역을 반나절 정도 돌아보는 코스도 여럿이다. 단거리 하이킹 코스로 세계 평화의 탑 ‘샨티 스투파’에 다녀오는 코스가 인기다. 샨티 스투파는 해발 1100m에 자리해 히말라야와 포카라 풍광을 한 품에 안을 수 있다. 페와호수에서 오솔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르면 탑에 닿는다.
샨티 스투파와 함께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코스가 사랑곳(Sarangkot)이다. 해발 1600m에 자리한 마을로, 가벼운 산행으로 히말라야 설경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새벽녘 해가 뜰 때 낮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두운 하늘 뒤로 보라색 빛이 드리우고 해가 천천히 떠오르면서 세상이 금빛으로 변하는 모습은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준다. 마법처럼 마음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뭉클함이 솟아오른다. 이렇게 히말라야가 마음속에 스르르 스며든다.
포카라(네팔)=채지형 여행작가 travelguru@naver.com
여행 정보
포카라 직항편 없어 카트만두 경유해야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카라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대한항공에서 1주일에 4회 카트만두 직항을 운항하고 있으며 7시간40분 걸린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국내선 비행기로 30분 더 가야 한다. 한 가지 팁. 포카라행 비행기를 탈 때는 오른쪽에 앉는 게 좋다. 설산을 볼 수 있기 때문. 시차는 한국과 3시간15분 난다. 한국 오전 9시는 네팔에선 오전 5시45분.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고 사진 1장이 필요하다. 관광비자로 15일과 30일, 90일 선택할 수 있다.
가장 맛있는 맥주는 힘든 산행 후 마시는 ‘에베레스트’ 맥주(사진)다. 트레킹을 마친 이들은 삼삼오오 레이크사이드에 모여 맥주잔을 시원하게 부딪친다. 트레킹을 자축하고 원기회복을 위한 시간이다. 포카라 중심가 레이크사이드에서는 길거리 음식인 사모사부터 이탈리안 피자, 육즙 넘치는 스테이크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여기에 향 진한 커피와 형형색색의 칵테일까지 몸과 마음을 채울 음료도 넘쳐난다. 밤이 되면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거리에 넘실댄다.
물론 네팔 전통 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달밧을 비롯해 차트 마살라나 버터 커리 등 다채로운 인도 음식도 즐길 수 있다. 김치찌개와 삼겹살이 그리운 한국 여행자를 위해 한국 음식을 내는 음식점도 적지 않다.
매년 12월28일부터 1월1일까지 레이크사이드에서는 거리축제가 열린다. 매일 밤 네팔 전통 공연이 흥겹게 펼쳐진다. 레스토랑들은 길거리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여행자의 오감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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