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노 박사의 시장경제 이야기 (68) 자연에서 공원으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미국 북서부에 있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이다. 공원 크기가 대략 9300만㎢로 남한 면적의 10%쯤 된다니 어마어마하다. 대충 훑어보는 데만 사나흘, 꼼꼼히 보려면 1주일 이상 여행해야 한다. 당연히 걸어서 보는 것은 어림없고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
옐로스톤은 번역하면 ‘노란 돌’이란 뜻이다. 공원 안의 돌과 바위가 유황 성분이 포함된 물로 인해 노랗게 변한 데 따른 것이다. 물에 유황이 많은 건 옐로스톤이 화산 지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옐로스톤 자체가 지름이 50~70㎞에 달하는 초거대 칼데라 지형 위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옐로스톤 분화구가 폭발하면 전 지구적 재앙이 될 거라고 한다.
공원이 크고 이런저런 의미로 대단한 만큼 옐로스톤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공원을 홍보하는 책자엔 예외 없이 “The world first national park”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옐로스톤이 1871년 세계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란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다.
1988년 대화재 초기대응 늦어 진화 실패
세계 최초, 최대의 국립공원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옐로스톤에도 의외의 시련은 있었다. 1988년에 있었던 옐로스톤 대화재가 대표적이다. 봄 가뭄으로 시작된 산불이 꺼지지 않고 무려 반년 넘게 공원을 태웠다. 불길이 거셀 땐 하루 10㎞ 이상씩 번져 나갔다고 한다.
당시 미국 정부라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산불을 끄려고 2만 명 이상의 진화 요원과 1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였다. 그럼에도 초기 대응이 너무 늦어 진화에 실패했고 그 결과 반년이나 끌게 된 것이다. 산불은 그해 말 첫눈이 내릴 무렵에 가서야 자연 소멸됐다. 하지만 그땐 이미 전체 공원 면적의 40% 가깝게 화마를 입은 뒤였다.
환경주의자들은 항상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한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자연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물과 불, 바람과 지진의 위력을 떠올려 보라. 거친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건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인간에겐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 섬세히 추려 정리한 자연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원이 바로 그런 인간 친화적으로 변신한 자연의 대표 격이다. 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잘 정리된 공간이다. 인간이 땅과 물, 산과 호수에 시간과 돈을 들여 가치를 증진시킨 게 바로 공원이다.
자연을 공원으로 바꾸자고 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런 이들은 자연은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은 재화를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탄광에서 막 캐낸 철광석을 생각해 보자. 철광석은 철 성분이 약간 함유된 돌이다. 그것만으론 별 가치가 없다. 하지만 철광석에서 철을 추려내 선철과 강철을 만들면 가치가 증진된다. 그렇게 얻어진 강철로 자동차를 만들면 애초 철광석의 가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철광석에 가치를 부여해 자동차를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을 개발해 공원으로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설악산을 그대로 두면 그저 괜찮은 산일 뿐이다. 하지만 설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개발하면 인간에게 이로운 자연 자원이 된다. 남해의 다도해는 이름 그대로 섬이 많은 바다다. 그대로 두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수천 개의 섬일 뿐이다. 하지만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투자하면 다도해의 섬들도 언젠가 동북아의 베니스로 불릴 날이 올지 모른다. 자연은 인간이 하기 나름이다. 우리의 국토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자연발화일 때 놔두자?
20여 년 전 옐로스톤에서 발생한 산불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참사로 끝난 건 인간은 자연의 일에 간섭해선 안된다는 몇몇 환경주의자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의 산불 대응 정책은 공원에서 불이 나면 일단 그게 인간에 의한 인공 발화인지 자연 발화인지 조사하고 자연 발화라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1988년의 화재는 오랜 가뭄과 번개로 인한 자연 발화로 알려졌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산불 발생 초기 진화에 손을 놔 버렸다. 옐로스톤 화재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방침 탓에 옐로스톤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고, 이를 계기로 자연 발화라도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인간이 직접 진화에 나서는 걸로 미국의 공원 관리 정책이 바뀌게 된다. 자연 자원의 가치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려면 자연 그대로 내버려둬선 결코 안 되며 인간에게 우호적인 상태로 개발해야 한다는 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인간에게 날것 그대로의 자연은 언제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국토를 개발하는 관점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 기억해주세요
미국의 산불 대응 정책은 공원에서 불이 나면 일단 그게 인간에 의한 인공 발화인지 자연 발화인지 조사하고 자연 발화라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1988년의 옐로스톤 화재는 번개로 인한 자연 발화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산불 발생 초기 진화에 손을 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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