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오피스텔서 뛰어내려
"모든 것 안고 가겠다" 유서 남겨
박지만 씨와 육사 동기
변호인 "끼워맞추기 수사에 피의자들 극단으로 몰려"
檢 "불행한 일 안타까워"
적폐청산 관련 세번째 자살
윤석열 지검장 책임론 '솔솔'
[ 신연수/박진우/고윤상 기자 ]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사진)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7일 투신자살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어진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또다시 나오자 이를 총괄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 전 사령관을 대변해온 임천영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 입회하고 토의해 보니 이 전 사령관이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모든 것 안고 가겠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이날 오후 2시48분께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 13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시신은 인근 경찰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른바 ‘세월호 정국’이 박근혜 정부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무사 부대원들을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 안산 단원고 학생 동향을 사찰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이 전 사령관을 불러 조사한 뒤 이달 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이 전 사령관은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유서에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 세월호 유족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일했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유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중앙고, 육군사관학교(37기) 동기다.
검찰은 크게 당황한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군인으로서 오랜 세월 헌신해온 분의 불행한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적폐 수사’ 적신호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 수사’를 받다가 유명을 달리한 피의자는 이 전 사령관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진행 중 검찰 조사를 받던 피의자 두 명이 1주일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0월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모씨가 춘천시의 한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1주일 뒤 수사 은폐 의혹을 받던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렸다.
적폐 수사에 집중해온 ‘윤석열호’엔 적신호가 켜졌다.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압박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며 수사를 총괄하는 윤 지검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이후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자 이전 정권의 각종 비리를 들춰내기 시작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 국정원 불법 사찰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국정원장 4명(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등이 줄줄이 구속됐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한 수사도 적폐 청산의 일환이다.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한 로펌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강압적으로 해 피의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며 “답을 정해놓고 끼워맞추기 수사를 하니 극단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연수/박진우/고윤상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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