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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고용·임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결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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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일자리 창출도 격차 해소도 다 놓친 '소득주도성장'

지난 3분기 상·하위 가계소득 격차가 11년 만에 최악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하위 20%(1분위) 계층 소득은 지난해 동기 대비 7.0% 줄었다. 올 들어 3분기 연속 감소다. 차하위 20%(2분위)도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최상위 20%(5분위)의 소득은 8.8% 늘었다. 차상위(4분위)도 5.8% 증가했다. 누가 봐도 긴 말이 필요 없는 양극화요, 소득격차의 심화다.

나라 안팎에서 온통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뿐인데 경제적 약자계층이 더 어려운 여건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소득의 양극화는 중산층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도 내버려둘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 이슈는 보는 관점에 따라 양극단의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불평등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역설했지만, 이병태 KAIST 교수 등은 지니계수를 제시하며 한국의 불평등 정도가 상대적으로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제 비교가 어떻든 소득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주목할 것은 현 정부 들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골간으로 공표한 ‘J노믹스’의 핵심은 국가가 나서서 저임금 근로자·가계의 소득을 올려주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대폭 인상시킨 배경이다. 그런데 지난 1,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이 정책이 내건 것과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소득주도성장’ 기치 아래 문 정부가 2년간 투입한 일자리 예산이 54조원에 달한다. 베트남의 1년 전체 예산과 맞먹는 재정이 관제(官製) 일자리에 투입된 것이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참담하다. 전방위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고용참사’라는 말이 일상화됐다. 월별 고용통계는 매번 보기가 두려운 상황이다. 경제 전망도 악화일로다.

고용 창출은커녕 일자리를 줄인 판에 소득격차까지 심화시켰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 생태계에 과도한 충격을 주면서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 문 정부 출범에 깊이 관여한 경제전문가들도 한결같이 문제가 있다고 걱정하는 정책이다. 3분기 소득통계는 저소득층, 특히 빈곤 가계의 재활을 도와주는 맞춤형 복지로 가야 하는 이유도 보여준다. 정부도 국회도 내년 예산안 심의에서 복지 부문을 좀 더 섬세하게 살펴보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11월23일자 한국경제신문>

사설 읽기 포인트

소득은 생산성 혁신에 크게 좌우돼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 무시한 논리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의미하는 ‘J노믹스’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다. 이 가운데 가장 앞서면서 중심인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정책이 주를 이루는 공정경제는 이념이나 지향점에 가깝다. 혁신성장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부문이다. 이 때문에 혁신성장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분배와 형평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성장과 발전도 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적인 정책이 급등한 최저임금이다. 일련의 친노조 정책도 그렇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에 대해 많은 경제학자가 잘못됐다고 지적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앞서 선거 과정에서 경제공약을 만들 때부터 ‘캠프’에 참여했던 ‘주류 경제학자’들도 그런 문제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수용하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의 실체는 임금주도성장으로, 해외 노동경제학계에 이런 주장이 없었던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임금의 증가는 성장에 따른 결과물이요, 소득은 생산성 혁신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라는 기본원리가 무시된 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근본적인 한계다.

물론 취지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이나 빈곤 가계의 소득을 끌어올림으로써 경제적 약자를 적극 지원하고, 이를 통해 소비지출이 늘어나면 전체 경제가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설 것이라는 이론 구조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되지 않았다. 임금의 본질이 부정되면서 고용시장에 먼저 충격파가 미쳤다. 임금 급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주로 저소득층 일자리 시장이 먼저 타격을 받았다. 통계청이 매월 정례적으로 발표하는 고용통계가 이를 증명했다. 일자리 참사라는 말은 매월 되풀이됐다. 일자리 창출도 제대로 못해낸 판에 소득격차 해소도 놓쳤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신문이 통계청의 이 발표를 근거로 사설(논평)을 내놨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실험적 정책이 시행된 이후 1년 반 동안 이룬 게 없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정작 약자를 더 어렵게 해버렸다는 점이 이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가장 아픈 대목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예고는 국내에서만 나온 것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성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자와 고용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이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지적을 언제까지 외면할까.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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