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가 기술수출 주도
올들어 11월까지 11건 수출…계약금 5조 넘어 작년의 3배
에이비엘·인트론바이오 등 벤처기업 수출만 5건 달해
유한양행이 수출한 신약도…벤처 오스코텍이 개발한 물질
"바이오산업 한단계 도약"
시간 걸리는 신약 직접 개발않고, 기술수출 통해 성장 기반 확보
다국적 제약사와 네트워크 형성…풍부한 바이오 투자금 바탕
시장성 있는 아이템 찾아 연구…"기술수출→신약개발 선순환"
[ 임유 기자 ] 한미약품은 2015년 사노피 베링거인겔하임 얀센 등과 잇따라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직접 개발하지 않고 초기 단계(전임상이나 임상 1상)에서 기술을 수출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일부 계약은 파기되기도 했지만 바이오벤처업계에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신약 개발에 매달리지 말고 ‘기술 수출’을 통해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라.” 이후 한미약품 전략을 택한 기업들이 생겨났다. 올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이 5조원을 넘어섰다. 작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일부 바이오벤처의 추가 기술수출 계약이 임박해 있어 수출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기술수출이 급증하자 “국내 바이오산업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미약품의 대규모 계약 이후 변화된 바이오벤처의 기술개발 전략과 대규모 바이오 투자 등이 기술수출 러시를 몰고온 요인이라고 꼽는다.
2015년 한미약품 기술수출서 아이디어
지난달 에이비엘바이오, 인트론바이오 등 5개 회사가 맺은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약 3조4000억원에 이른다. 올해 11월까지 누적으로는 11건의 기술수출이 성사됐다. 계약금액은 5조362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기술수출 규모는 1조4000억원이었다.
올해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바이오벤처들이 기술수출을 이끌었다. 에이비엘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30일 미국 바이오 기업 트리거테라퓨틱스에 암과 안질환 신약 후보물질 ‘ABL001’을 6600억원에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616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두 번째다. 설립된 지 3년 된 이 회사는 독자적인 이중항체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중항체란 하나의 질환과 관련된 단백질 두 개에 동시에 작용하는 항체다.
지난달 스위스 제약사와 7526억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인트론바이오를 비롯해 크리스탈지노믹스, 앱클론 등도 올해 큰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유한양행이 얀센에 1조4000억원에 기술수출을 한 항암 신약도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이 먼저 개발한 물질이다.
업계에서는 이달에 서너 건의 기술수출 계약이 추가로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가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 중이고 티움바이오도 다국적 제약사와의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이오벤처에 몰리는 자금
바이오 분야의 기술수출이 급증한 이면에는 풍부한 자금이 있다. 바이오 부문으로 몰리는 풍부한 자금은 기술개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바이오·의료업종에 대한 신규 투자 금액은 7016억원으로, 지난해 3788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올해 연간으로는 8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바이오벤처 수도 지난해 4곳에서 올해 10여 곳으로 증가했다. 에이비엘바이오도 올해만 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5년 이후 바이오벤처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 직접 개발하지 않고 초기 단계에서 기술수출을 추진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과 맺은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전략을 세우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바이오벤처가 다국적 제약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도 ‘시장성’ 있는 아이템을 찾는 데 기여했다. 신약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수요자인 다국적 제약사를 포함해 다양한 시장 수요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맞춤형 연구를 시작한 국내 바이오벤처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기보다 돈이 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며 “기술수출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등 주요 바이오시밀러업체들의 보이지 않는 역할도 있었다. 이들이 국내 바이오시밀러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 알린 덕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국의 바이오벤처 기술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벤처의 기술수출이 늘고 있다는 것은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그만큼 탄탄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바이오 창업이 더 활발해지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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