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윤정학 역 배우 유아인
유아인은 스타이자 배우다. 유아인의 스타일,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는 대중들의 주목을 끌고 때론 논란의 주인공이 된다. 동시에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래 배우들 중 가장 돋보이는 필모그라피를 자랑한다. 사극, 액션, 멜로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역할로 사랑받아왔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도 유아인은 스타와 배우의 모습을 모두 보여줬다. 작품 선택을 할 때부터 SNS 설전으로 홍역을 치렀던 유아인은 작품 속에선 누구보다 다채로운 변화를 갖는 윤정학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11월 IMF 구제금융을 앞둔 대한민국을 조명한 영화다. 지금까지 아픔의 기억인 IMF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유아인은 IMF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금융맨 윤정학 역할을 맡았다. 극을 중심적으로 이끌거나, 박수받고 찬사받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 아니지만 국가부도 위기를 앞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윤정학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캐릭터다. 그래서 아무나 연기할 수 없었지만, 위의 이유로 캐스팅에 난항도 겪었다. 그런 윤정학을 유아인은 "고민없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혜수도 '남자 배우라 더 주목받는 역할이 많았을 텐데 출연해 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국가부도의 날'을 하게된 이유가 뭔가.
배우라는 일이 주목받는 일이지만, 주목받는 게 제가 일을 하는 목적은 아니다. 제 목적은 작품이다. 그래서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면을 쓰고 카메오로 출연했고, '베테랑'에서 조태오 같은 악역도 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부도라는 상황이 개인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흥미로웠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국가의 중대한 사건을 여성이 끌고 나가는 것에 매력이 있었다.
▶ 확실히 윤정학은 극의 중심과는 떨어져 있는 역할이다.
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들을 진입시키는 역할이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다.
▶ 여성이 중심이라 흥미롭다고 했다. 작품을 선택했을 당시, 여성관과 관련된 문제로 SNS에서 설전이 있었다. 혹시 그 논란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친걸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건 아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건과 연결짓지 않더라도 작품 자체로 신선했다. 전 어느 한 쪽의 편도 아니었고, 어느 한 쪽의 힘을 싣어주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 사실 원치않았을 소모전이 아닌가 싶다.
괜찮다. 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그 의견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꿈꾼다. 어느 한 쪽의 의견으로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더 큰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정말로.
▶ 인터넷을 자주 하는 편인가? 본인의 이름도 검색해보고.
그럴 때도 있지만 거의 안하는 편이다. 휴대전화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전화도 무음, 문자와 모바일 메신저 알람도 꺼 놓았다. 제가 보고 싶을 때만 휴대전화를 본다. 제가 연락이 안되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은 있다.(웃음) 전화나 문자를 답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늦어서 죄송합니다'이거다.
▶ 그럼에도 SNS를 하는 이유가 뭘까.
있으니까 하는 거다. 특별히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있으니까 보고, 써보고, 느껴보고 하는 거다. SNS는 제 마음에 대해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일을 간단하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편안함을 즐기는 거다. 그렇게 놀면서 소통하는 거 같다.
▶ 30대 초반 또래의 다른 배우들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런 '다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도 받는데, 억울하진 않나.
억울할 때도 있다. 그땐 '내 인생을 내가 살겠다'는 마음과 '억울함'이 제 안에서 싸운다. 저의 인생을 산다는 마음이 승리하는 걸 스스로에게 안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간편한 것만 하는 게 아니라 후회없는 선택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길을 가고 싶다.
▶ 그럼에도 의도를 오해한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
상처'를'이 아니라 상처'도' 인 거 같다. 다양한 느낌이 든다. 상처도 받지만 치유도 있고, 성장도 있다. 어느 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매몰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런 반응들이 나올 때 외면적인 상황보다는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본래는 미술을 전공했고, 우연히 배우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 일을 하지 말 걸' 이런 생각이 들진 않나.
제가 그렇게 욕만 먹는 사람이 아니다.(웃음)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도 있는 거고. 저에게 보내주시는 큰 애정과 지지를 느낀다.
▶솔직히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놀랐다.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작품에서 역할도 그렇고.
전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보다 특별할 수 있을까 싶다. 예전엔 너무 떨려서 인터뷰 전에 청심환도 먹었는데, 이젠 그런 불안함도 많이 사라졌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불안함이 나온 거 같다.
▶전작 '버닝'과 비교해 '국가부도의 날'에서의 연기는 어땠나.
'버닝'에서는 실제로도 옷을 벗지만(웃음), 뭔가 연기적인 갑옷을 벗어 던진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다시 챙겨 있은 거랄까. 자연스럽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통해 결국 이 작품에 걸맞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 '국가부도의 날'의 다른 주연 배우들인 김혜수, 조우진, 허준호와 단 한 장면도 마주치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외롭진 않았나.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지만 종종 촬영 스케줄이 맞물리면서 마주치긴 했다. 볼 때마다 존경심이 들었다. 내공이라는 게 느껴졌다. 김혜수 선배는 자길 불태우는 구나, 조우진 선배는 정말 날카롭게 인물을 표현하는구나. 허준호 선배는 정말 몸을 던지는구나 싶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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