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속 변화' 선택한 구광모의 LG
계열사는 안정에 방점
글로벌 경기 둔화에 CEO 대부분 자리 지킬 듯
LG전자·생활건강 등 好실적도 유임에 '한 몫'
지주사는 변화에 무게
(주)LG 팀장 상당수 교체 예상…주력사업 전략 다시 짤 가능성
그룹 전체 임원 인사폭은 클 듯…실적부진 LGD는 임원 축소 전망
[ 오상헌/고재연 기자 ] 올 연말 재계 임원인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LG다. ‘파격 인사’의 조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그룹 총수가 바뀐 점, 그의 나이가 40세에 불과한 점, 취임 보름 만에 ‘오른팔’ 격인 (주)LG 부회장을 교체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지난 9일 그룹 모태인 LG화학 최고경영자(CEO)를 사상 처음으로 외부(신학철 미국 3M 수석부회장)에서 수혈하자 “추가로 교체되는 부회장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다.
하지만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최종 선택은 달랐다. 국내외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영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만큼 조직을 흔들기보다는 검증된 리더십에 맡기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경기 둔화 위기감 확산
26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이 핵심 계열사 CEO를 맡고 있는 부회장을 대부분 유임시키기로 한 배경에는 세계 경기 둔화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3분기에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6.5%)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과 일본도 전 분기보다 성장률이 꺾이는 등 불황 조짐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나 홀로 성장’을 누리고 있는 미국도 내년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악화하면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지는 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리더십을 찾기 마련”이라며 “LG그룹이 ‘전쟁 때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을 따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요 계열사 CEO들이 올해 좋은 성적을 낸 점도 유임 결정에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LG전자와 LG생활건강은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LG유플러스도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성적을 거둘 전망이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지만, 구 회장은 CEO의 판단 미스가 아닌, 경기를 타는 산업 특성과 글로벌 경쟁 심화 등 외부 변수 영향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치게 큰 폭의 쇄신 인사가 조직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구 회장이 지난 7월 당시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과 하현회 (주)LG 부회장을 맞바꾸는 ‘원 포인트’ 인사를 한 만큼 담당 업무 기준으로는 이미 부회장단의 절반(6명 중 3명)을 교체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LG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추가 교체는 임직원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으로 봤다는 얘기다.
그룹 컨트롤타워는 ‘쇄신’에 무게
업계에선 구 회장이 임원 인사에서 ‘투 트랙’ 전략을 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안정’에 방점을 둔 계열사와 달리 지주사 인사는 ‘변화’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돼서다. (주)LG의 팀장 중 상당수가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주)LG의 기획 법무 비서 재경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각 팀의 수장은 계열사에서 선발한 부사장, 전무 등 임원들이 맡고 있다. (주)LG는 지난 7월 이명관 LG화학 최고인사책임자(CHO·부사장)를 인사팀장으로 선임, 쇄신 인사를 예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이 현장에서 싸우는 계열사에는 ‘안정’을,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할 컨트롤타워에는 ‘변화’를 각각 인사 화두로 내세웠다고 봐야 한다”며 “구 회장이 새로 선발한 ‘브레인’들과 함께 주력 사업의 미래 전략을 다시 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룹 전체 임원 인사 폭은 상당히 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취임 첫해인 1995년 사상 최대 규모인 354명을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올해 인사에서는 사장급 CEO가 이끄는 중소 규모 계열사와 LG전자, LG화학 등의 일부 사장·부사장급 고위 임원이 바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적이 부진한 LG디스플레이는 전체 임원 수가 줄어들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임원 승진 규모는 계열사 실적에 따라 좌우될 공산이 크다”며 “구 회장이 인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LG의 기업문화를 도전적인 분위기로 바꾸자는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고재연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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