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국제 마라톤 경기가 열린 지난 18일. 결승점 500m를 앞두고 선두 다툼을 벌이던 중국 선수에게 한 자원봉사자가 국기(오성홍기)를 주려고 뛰어들었다. 또 다른 사람은 100m 지점의 트랙 안까지 들어와 국기를 걸쳐줬다. 국기는 곧 땅에 떨어졌고, 균형을 잃은 선수는 5초 차로 우승을 놓쳤다. 경기 후 그는 국기를 팽개친 ‘패륜 선수’로 찍혀 공개사과를 해야 했다.
대회 주최 측은 1~3위 중국인 주자가 반드시 국기를 걸치고 결승선에 들어오도록 하는 방침을 미리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이렇게 빗나간 애국주의가 중국을 휩쓸고 있다. 오성홍기를 앞세우고 중국인들을 구하러 가는 내용의 영화 ‘전랑2’ 등 애국심 고취 작품들도 잇따라 개봉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폭설로 일본 공항에 발이 묶인 중국 관광객들이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부르며 “일본이 중국인을 무시한다”는 선동질로 소란을 피웠다. 샤먼대 교수와 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은 중국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출됐다. 이런 일들은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당·정이 ‘애국주의’를 앞세우는 가운데 더 잦아지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건국기념일(10월1일)에도 “중화 민족이 애국심으로 뭉쳐 무역전쟁 등 외부 세력에 맞서자”고 역설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톈안먼 사태 유혈진압 후 집권한 장쩌민 전 주석의 ‘애국주의 교육 운동’과 연계해 해석한다. 당시 공산당은 학생들에게 애국주의 사상을 고취시키면서 혁명 유적지를 순례하도록 하는 ‘홍색관광’ 붐을 일으켰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샤오펀훙(小粉紅·작은 분홍색) 세대’는 작은 비판도 참지 못하고 공격을 감행한다.
중국의 비뚤어진 애국주의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대만의 한 영화제 시상식에서 중국 배우들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대만 수상자들과 설전을 벌였다. 탈세로 거액을 추징당한 판빙빙은 “중국은 단 한 뼘도 작아질 수 없다”는 공산주의청년단 구호를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탓할 게 아니지만 애국심이 배타적 이념으로 바뀌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이 내부 통제와 외부 대결용 도구로 악용될 때는 국가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도 크다. 정치인들이 애국주의를 외치는 순간 제일 먼저 위험해지는 건 국민이다. 군국주의 일본과 나치 독일 등도 현란한 수사로 포장한 감상적 애국주의를 무기로 삼지 않았던가.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다른 나라나 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주의로 이어질 때는 광신적 쇼비니즘까지 치닫게 되니 더욱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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