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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35)] 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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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10년 뒤 결혼한 '나'는 작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면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운다

'달동네'라고 부르던 곳이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졌을리 없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는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는 쥐>에 관한 기묘한 뉴스 보도를 보다가 고시원에서 살았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과거는 ‘쥐의 몸에서 자라난 사람 귓속의 달팽이관 속의 달팽이처럼’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서 살았던 시절로 기억된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 고시원의 유전자는 ‘나’의 몸속에 이식되어 있다.

아버지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고 ‘나’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갈 곳이 없어진 ‘나’는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학교 인근의 고시원, 그것도 가장 싼 고시원, 간판이 갑을고시원인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월 9만원. 식사 제공.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형에게 얻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폭이 40센티가 될까 말까한 복도를 걸어가 당도한 방은 방이라기보다 관이라고 불러야 할 크기였다.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 졸음이 온다. 자야겠다. 그러면 의자를 빼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책상 아래 공간으로 다리를 뻗고 자야 했다. 건물 옥상의 옥탑방에는 4인용 식탁과 대형 전기밥솥이 있다. ‘오래된 듯한 밥이, 그러나 많이, 밥솥 속에 들어 있었다.’ 각자 반찬만 준비해서 먹으면 된다. 그리고 협소한 공용 세면장과 화장실, 공용 세탁기가 있다. 간신히 잘 수 있고 간신히 굶지 않을 수 있으며 간신히 씻을 수 있다. 말하자면 고시원이란 간신히 삶을 견딜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첫날 밤 잠이 오지 않던 ‘나’는 워크맨(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을 찾았다. 이어폰이 없어서 최대한 소리를 낮춰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최저 볼륨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옆방 남자의 분노에 찬 항의를 듣는다. 조용히 해. 1991년 당시 고시원은 일용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의 종업원들이 숙소로 쓰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며 아직도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 그는 이 고시원 최후의 진짜 고시생이었다. 방과 방은 1센티 두께의 베니어판으로 나뉘어 있었고 책상을 구르는 볼펜 소리와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생생히 들렸다.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발꿈치를 들고 걸었고 코는 조용히 눌러서 짰고 옆으로 돌아누워 둔부 한쪽을 힘껏 잡아당겨 소리를 내지 않고 가스를 배출하였다.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일 수 없기에 움직임 자체가 없어졌고 다리를 뻗을 수 없으니 늘 어딘가가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으며 나무처럼 딱딱해진 몸은 오래된 붙박이 가구처럼 느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가난한 이와 덜 가난한 이가 함께였다. 골목길 하나를 넘어가면 또는 산동네를 올라가면 갑자기 가난한 주거지가 나오는 식이기는 하였지만. 비록 초라한 생활이더라도 사람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다. 이런 동네들, 그러니까 달동네라고 부르던 곳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가난한 자들이 없어졌을 리 없으나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얼핏 봐서는 가난이 드러나지 않는 도시의 고시원에, 도시 찜질방 한편에서 고단한 육신을 누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년 육 개월 후 고시원을 나왔고 세월은 십 년이 더 흘렀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 사이 임대 아파트 하나를 마련하였고 작고 초라한 곳이지만 입주하던 날 ‘나’는 울었다. 그리고 두 발을 뻗고 잔다. 소설의 말미에서 ‘나’는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갈 데 없어진 사람들이 잠시 휴식할 데가 있었다면 좋겠다는 것이지 그곳이 그들의 지속적인 주거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고시원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여 좀처럼 대화하지 않고 서로 피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곳 화장실에서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는 낙서, <인생을 사는 것이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낙서를 보며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단한 심경에 공감하지 않았던가.

박민규 작가의 다른 작품을 12화에서 이미 읽었으되 다시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된 것은 얼마 전 종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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