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통상전쟁 2.0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펜스 부통령 "中, 美 산업패권 위협"…'제조 2025' 버려라
중국 내 美기업 73%가 통상마찰로 타격…탈출 가시권
글로벌 공급망 재편 촉각…中 지재권 보호 강화해야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지난 주말부터 대화를 재개했다는 소식이다.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탐색전의 모양새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미·중 통상 마찰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은 지식재산권을 본격 거론하면서 중국 정부를 옥죄고 있지만 중국은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단기적 미봉책으로 보이지만 일부에선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중국 제조 2025’ 전략이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내놓고 있다.
미·중 통상전쟁 2.0 시대가 시작됐다. 중국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후인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제조 2025는 중국을 현대화하고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벌이는 국가 전략이다. 핵심 부품과 원자재 자급률을 2025년 7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국 내에서 완벽한 수직계열화(홍색 공급망)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시 주석이 즐겨 말하는 소위 자력갱생의 길이다. 미국이 가장 주시하고, 미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중국이 이 전략을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대부분 사람은 믿지 않는다. 중국 내부에선 대미 유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중국 공산당이 과감하게 2025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는 약속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전하는 언론도 있다. 시진핑의 멘토로 유명한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블룸버그 주최 경제 포럼에 참석해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 해결을 위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美 기업 88% 중국 당국에 불만
통상 마찰 해결이 절박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제재로 ZTE 화웨이 등 중국 첨단기업이 거의 사업 활동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제재는 또 한 차례 중국 기업에 충격을 줬다. 중국 내 외국 기업들의 탈출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네덜란드의 필립스나 미국 텍사스주 공조업체 레녹스 등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 가운데서도 중국 사업을 접은 기업이 많다.
미중비즈니스협회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의 73%가 미·중 통상마찰로 타격을 받고 있으며 28%는 중국 당국의 조사가 극심해졌다고 응답했다. 88%는 중국 기업에 우선권을 주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가뜩이나 인건비 등 고정비용 상승과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사업의 불안정성, 기술 무단 침해 우려 등으로 어려운 기업 환경이었다. 새로운 공급망이 형성된다면 당장 중국을 떠나 가까운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에 자리를 잡겠다는 게 미국 기업들의 바람이다.
중국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대만의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은 2020년 완공 목표로 미국 위스콘신주에 액정표시장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美, 지식재산권 침해 본격 거론
미국의 대중 강경 노선은 확고하다. 4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미국 정부의 대중관(對中觀)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펜스는 연설에서 무역 마찰과 남중국해 문제, 종교, 인권 등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대부분 건드리면서 중국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번 연설이 1946년 러시아 팽창주의 정책에 경고를 보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철의 장막 연설과 비슷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 중국은 자유진영 국가에 대한 폐쇄정책으로 ‘죽(竹)의 장막’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특히 제조 2025에 대해 “중국은 세계 선진기술의 90%를 확보하기 위해 관리와 기업인들을 총동원하고, 모든 수단을 써서 미국의 지식재산을 강탈하려 한다”며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인에게 중국 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대가로 미국 기업의 영업비밀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미국 기업을 사들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 정보기관이 미국의 최첨단 군사 청사진들을 대규모로 훔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점에서 중국을 미국 산업패권을 위협하는 국가라고 규정했다.
중국이 첨단기술 국가로 가고 산업패권을 쥔다는 건 실로 어렵다. 미국의 제재로 ZTE와 화웨이 등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상반기 ZTE의 적자는 4000억원이었다. ‘세계의 공장’인 덕분에 기술 추격으로 공정기술과 실용기술에선 세계 선두권에 진입했지만 원천기술과 첨단기술에선 아직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기초과학 연구도 미국과 유럽에 비해 뒤처졌다. 그동안 자립 기술을 찾으려 했지만 중국의 기술개발 환경으로선 아직 열세다.
中국유·민간기업 융합해 방산 육성
시 주석이 지난 9월 ‘중국의 러스트벨트’인 헤이룽장(흑룡강) 지역에서 “국제적으로 핵심 기술과 첨단기술을 얻기가 어려워지고 있어 자립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말은 지식재산권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국유·민간기업 융합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간기업에 최소 3870억위안(약 63조원)의 자금을 투자했다고 13일 보도했다. 군사기술 현대화와 이를 이용한 민간기술 이전 등을 노리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최초 기술을 익힐 때는 방적기 등 영국 것을 모방했지만) 고도성장기에는 어떤 좀도둑질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이 이제 원천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자 지식재산권 보호에서 성숙함을 보이라는 주문이다. 중국은 완성된 제품만을 가지려 할 것이 아니라 중간재를 많이 개발해 공급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기초과학 열악, 원천기술 확보될까
세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 있다. 더 이상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할 어떤 장점도 없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이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덮일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미·중간 패권다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마당이다. 물론 경제 패권은 안보와 지정학적 패권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중국 체제는 기초과학이나 첨단기술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기업에 공산당원이 존재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확립돼 있지 않은 나라다. 그러면서 일대일로 확장 등 세계 패권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을 보는 눈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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