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납부할 상속세가 7100억원으로 알려지면서 기업승계 시 세금이 다시 산업계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한경 11월5일자 A1, 3면).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계의 절박감은 자못 심각하다. 국내 M&A시장에 나온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 300여 곳 중 다수가 상속세 부담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설문조사를 보면 연합회 소속사의 47%가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이 기업승계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답했을 정도다.
자본시장이 발달하고 개방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직면하는 큰 애로가 ‘경영권 위협’이다. 물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많은 선진국에서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보호 장치를 도입한 배경이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실효세율을 낮추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의 명목상 상속세 최고세율은 각각 60%, 50%, 80%에 달하지만, 기업상속의 경우 다양한 공제제도가 있어 실질 최고세율이 각각 11.2%, 4.5%, 3.0%로 뚝 떨어지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 그 반대다. 명목 상속세율은 50%지만 최대주주로 기업승계 시 오히려 할증돼 세계 최고(65%)가 된다. ‘부자 증세’ 틀에 갇힌 징벌적 세금이다. 가뜩이나 경영권 방어 제도가 취약한 데다 회사지분을 팔아 세금을 내야 할 판이니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가업상속 공제제도는 있지만 대상과 요건 모두 까다로운 데다 상한도 있어 이 혜택을 받은 기업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지난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상속세 인하 가능성을 언급하기는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바로 견제에 나섰다. 세 부담을 더 강화하라고 요구해온 일부 사회단체 주장에 여당이 공조를 한 셈이다.
기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만 보는 것은 낡은 관점이다. 전문기술 이전, 고용 확대, 기업가 정신 고취,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의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 초기인 1960~1970년대 시작한 기업 중 다수가 2~4세에 경영을 넘길 시기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기업을 접고 부동산 매입에나 나선다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까. 질시와 징벌의 부정적 시각을 떨치고 역량을 갖춘 장수기업을 적극 육성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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