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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 드는 방산업체…첨단 무전기 개발하고도 666억 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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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방위산업
(2) 규제에 신음하는 방산업체

정부 요구조건 변경 탓 늦었는데
年 영업이익의 15배 '벌금 폭탄'



[ 김보형/박상용 기자 ] 한국 방산업계 매출 1위인 LIG넥스원은 지난달 25일 다대역다기능무전기(TMMR)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TMMR은 아날로그 중심인 기존 군(軍) 통신체계를 디지털화해 미래형 전투체계를 뒷받침할 핵심 장비로 꼽힌다. 2025년까지 군 전력화에 따른 생산 규모가 1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5500여 명의 고용유발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차세대 군 통신장비 개발 성공의 기쁨도 잠시, LIG넥스원은 이튿날 발주처인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666억5000만원의 지체상금(납품지연 배상금)을 부과받았다. 계약 이행이 늦어지면 개발업체에 물리는 일종의 벌금이다. TMMR 개발이 예정보다 2년 이상 늦어졌는데, 애꿎은 개발업체에 거액의 부과금을 물렸다는 게 LIG넥스원 주장이다. 부과된 금액은 지난해 LIG넥스원이 거둔 영업이익(43억원)의 15배를 웃돈다.

방산업계는 신무기 및 군 장비 개발 과정에서 민간 업체의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정부가 일단 지체상금부터 물리고 본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와 방산업체 간 소송으로 이어져 대형 로펌들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해사 45기·예비역 소령)은 “무기 등의 개발 과정에서 요구성능 조건을 높이면 방산업체는 추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국산 무기의 지체상금은 사업비 대비 무제한인 데 비해 외국산 무기는 사업비의 10%로 제한한 방위사업관리 규정도 국내 방산업계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성능 변경 수시로 요구하면서…무기 개발 늦어지면 '중징계'

'최고 성능' 무리한 요구
도입 때부터 세계 최고 '고집', 전력화 지연…사업자체 취소도

인도 지연에 과도한 배상금
K2전차·통영함 납품 지연…부품 문제인데 원청업체 '철퇴'

원가 산정도 불합리
하청업체가 원가 절감해도 방사청에 신고 안했다고 제재

방위산업은 고객이 국가 등으로 제한되는 특수성을 띤다. 방위사업청은 구매기관이자 1차 감독기관이다. 감사원은 방사청을 감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검찰에 고발한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방사청과 방산업체를 수사한다. 방위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런 이중 삼중의 규제가 방위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성능요구조건(ROC)과 막대한 지체상금(납품지연 배상금), 불합리한 원가 산정이 대표적인 3대 규제로 꼽힌다.


(1) 지나치게 깐깐한 성능요구조건

도입 때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만을 요구하는 ROC는 방산업계의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독일, 이스라엘 등 방산 선진국은 대부분 실전 배치와 운용 단계를 거쳐 성능을 높이지만 한국은 개발할 때부터 완벽한 무기만을 고집한다. 국내 한 방산업체가 2012년 개발에 착수한 중적외선 섬광탄(기만탄)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중적외선 유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한국 공군의 항공기를 보호하는 무기다. 공군은 당초 2014년부터 이 섬광탄을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섬광탄에도 없는 ‘복사강도(물체가 방출하는 빛의 강도) 상한선’이 ROC에 포함되면서 전력화가 2년이나 늦어졌다.

현존하는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ROC 때문에 사업 자체가 취소된 사례도 있다. 2013년 실패로 결론 난 25㎜ 차기 중기관총 개발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방사청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46억원을 투입했지만 총기가 너무 무겁고, 대공 기능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었다.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국가가 없는 무기체계로 미국도 2009년 실패한 사업이었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최소 필요량만 전력화한 뒤 차근차근 성능을 개량하면 방산업체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 전력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 과도한 원청업체 배상금

일방적인 지체상금 부과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체상금은 계약 이행이 늦어지면 지체된 기간에 대해 하루에 계약액의 0.075%만큼 방사청이 계약 업체에 부과하는 벌금이다. 하지만 방산업체의 잘못인지 명확한 사유를 따지지 않고 지체상금부터 때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산 명품 전차로 꼽히는 K2전차를 생산하는 현대로템은 1700억원에 달하는 지체상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사청이 지정한 부품사의 파워팩(변속기·엔진) 조달이 늦어진 탓에 당초 2016년 말부터였던 K2전차 납품 시기가 2019년 이후로 미뤄졌지만 책임은 고스란히 원청업체인 현대로템이 떠안았다. 지난 3분기 70억원의 적자를 본 이 회사의 지체상금은 하루 2억원을 웃돈다.

대우조선해양도 통영함 납기 지연과 관련한 1000억원대 지체상금을 놓고 정부와 소송 중이다. K2전차와 마찬가지로 방사청이 도입한 음파탐지기와 수중무인탐색기에서 발생한 문제 탓에 납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총기 제작업체인 S&T모티브도 협력업체가 납품하는 사격통제장치에 문제가 생겨 K-11 복합소총 납품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부과된 지체상금은 1000억여원에 달한다.

(3) 불합리한 원가 산정

방산업체로 지정된 93개 기업은 생산원가를 방사청에 신고해야 한다. 방사청은 실사를 통해 이를 검증하고 허위사실이 있을 때는 부당이득금 환수와 가산금 부과 등의 제재를 한다. 문제는 방산업체가 아니라 하청업체의 잘못에 대해서도 원청업체에 책임을 묻는 등 과도하게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국산 명품 무기로 꼽히는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지상방산은 하청업체가 방사청에 신고 없이 원가를 절감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았다. K-9 자주포의 전원공급장치를 공급해온 G사가 일감이 늘어나자 일부 단순 작업(코일 감기)을 다른 업체에 맡긴 게 화근이었다. 원청업체가 모르는 사안이었고,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방사청은 지난해 7월 철퇴를 가했다. 한화지상방산은 방사청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환수와 가산금 부과, 이윤 2% 삭감 등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지난달 1심 법원은 한화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도 지난해 9월 KAI 경영비리 수사 당시 고등훈련기 T-50의 인도네시아 수출 가격이 한국 공군 납품가격보다 싸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법원은 지난 2월 “해외 공급업체는 다른 가격을 적용할 이유가 있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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