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어떤 밸류 - (4) 서울 종로구 익선동
서울 종로구 익선동은 조선 전기부터 한성부의 주요 주택지역 중에 하나였다. 지리적으로도 종로구 정중앙에 있다. 지금도 오른쪽으로는 종묘, 북쪽으로는 운현궁과 창경궁, 서쪽으로는 인사동, 남쪽으로는 종로 등이 있다. 4대문에 핵심 지역 중에 주요 위치라는 얘기다.
익선동은 '한옥마을'이 유명하지만 정작 한옥마을로 지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재개발을 목적으로 14년간 지정되어 있던 익선도시환경정비구역이 조합설립이 미진하면서 지난 5월 해제되면서다. 해제 후 익선지구단위계획지역으로 변경됐고 서울의 마지막 한옥마을로 지정됐다. 익선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가로변은 5층, 안쪽 밀집지역은 1층으로 건물 높이가 제한된다. 프랜차이즈 체인점 형태의 업종진입도 규제된다. 한옥수선 비용은 최대 1억80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100년전 서울의 뉴타운, 익선동 한옥마을
익선동의 한옥마을이 생기된 유례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김경민 교수가 저술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와 '잃어버린 영웅들' 등의 도서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조선인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1888∼1965) 선생이 익선동을 비롯해 북촌 가회동, 계동, 삼청동 등의 중소형 한옥만으로 구성된 한옥지구를 조성했다. 1920년 부동산 개발 회사로 '검양사'를 세운 정 선생은 가세가 기운 조선 양반들은 토지를 매입해 큰 대지의 한옥을 철거하고 여러 채의 한옥을 대량 공급했다고 한다. 대저택을 사서 그 땅에 소규모의 한옥을 여러채 지어 조선인들에게 공급했다.
정 선생은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을 반영해 6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중당식 한옥 평형을 개발했다. 마루를 둘러싸고 방들이 모여 있고, 현관이 외부도로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이는 지금의 익선동을 비롯한 서울 주요 한옥마을에 남아있는 형태들이다.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사업이 중단될 때까지 매년 300채의 한옥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당시 한옥이 지어지지 않았다면 한옥의 맥은 끊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일제 침탈 이후 일본인들은 국내 토지를 소유하고 개발하는데 나섰다. 일본식 주택을 짓고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은 늘어났다. 반면 조선인들은 인구수가 급증했지만 마땅한 집이 없었고 주택난이 심각했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정 선생은 일제에 맞서고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100년 전에 이른바 '조선판 뉴타운'을 조성한 셈이었다. 선생의 딸인 정정식 여사는 "아버님은 '늘 조선의 집이어야 조선사람이 살기 편하다'는 얘기를 하셨다. 늘 한복을 입고 새벽에는 시조를 읊곤 했다"고 회상했다.
조선판 뉴타운을 주도했던 정세권 선생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휘말려 거의 전재산을 일제에게 강탈당했다. 이듬해까지 모든 재산을 강탈 당하고 건축면허도 취소됐다.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고 어떠한 사업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러한 배경이 있는 곳이 '익선동'이다.
◆일제에 맞서 탄생한 '조선판 뉴타운'…지금은 포토존 넘치는 상권
몰론 현재의 익선동은 이러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평일 오후임에도 익선동 골목에는 활기가 넘쳤다. 골목마다 걷고 있는 젊은 연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입장 대기를 위해 가게마다 서있는 인파의 행렬들, 저녁 장사 준비 혹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분주히 수례를 끌고 다니는 상가 주인들이 뒤섞여 있다. 좁은 골목과 인파로 인해 가계 재료의 수급이나 공사자재를 작은 손수레로 옮기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골목 어귀마다 재치 있는 소품들과 장식들, 저마다 뽐내는 이국적인 음식들과 상품이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100m 남짓한 골목 서너곳을 걷고 나면 어느덧 골목의 정취가 변한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니 어느덧 적막한 일상적인 서울의 도심이 나타났다.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에서 4D로 여행을 온 것 같은 분위기었다.
종심이 짧은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쉽게 구분하긴 어렵다. 역에서 가깝기에 걷는데 큰 부담이 없다. 100여m로 구성되는 골목들은 방문객 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저마다 다른 식당과 카페, 그리고 소품판매점부터 만화방·비디오방·오락실까지 있다. 마치 처음부터 리테일러들이 기획한 한옥 컨셉의 스트리트 상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거리가 짧기에 방문객들이 마음 편하게 전체를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서너바퀴를 돌아보면서 안면이 익은 통행자가 많았다. 여러번 둘러보는 방문객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짧은 골목이 유동인구를 많아 보이게 하고 가게의 줄이 길어 보이는 효과는 준다. 반면 상권의 확장성은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흔히 상권이 생기면 주변으로 퍼져가기 마련이지만 한옥거리와 골목이라는 특성이 맞물리면서 대로변이나 새로운 건물에 들어선 상가는 특유의 분위기가 살지 못했다.
◆거래량·가격 모두 급등한 익선동 한옥거리
익선동의 면적은 크지 않지만 삼일대로를 중심으로 북측과 남쪽의 건물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 한옥마을 거리는 삼일대로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지도 A지역), 삼일대로 북측은 이비스앰배서더호텔을 비롯해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중소형 호텔 및 호스텔이 절반 정도를, 2003년 입주한 291가구의 현대뜨레비앙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세대·다가구 및 중소형 오피스텔이 절반 정도를 구성하고 있다.
실거래가 신고 내역을 살펴보면 최근 익선동의 변화를 더욱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다. 실거래가가 공개된 2006년 이후 올해 10월까지 약 12년간 익선동 총 거래건수는 48건에 불과했다. 연평균 4건에 불과한 수준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2015년 이전 거래건수가 28건, 2016년 이후가 20건이었다. 최근 들어 거래량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A지역과 B지역의 격차도 확연했다. 익선동 한옥거리 상권이 형성된 2016년 이후 3년간 A지역 거래건수는 16건에 달했다. 반면 B지역은 단독주택 1건 및 근린상가 2건으로 3건에 불과했다. 거래 물건수를 감안하더라도 한옥거리와 기타 지역간의 관심도 차이가 분명해보였다.
A지역의 가격지표 상승률도 상당한 편이다. 2016~2017년 A지역의 3.3㎡당 물건별 평단가(총거래가/토지면적)를 살펴보면 최저가 2400만원에서 최고가 5300만원까지 거래가 이뤄졌다. 대체적으로 3000만원대 중반에서 4000만원대 중반까지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반면 올해 A지역에서 거래된 7건을 살펴보면 최저가는 3100만원으로 이전대비 약 700만원가량 상승했다. 최고가는 6400만원으로 900만원 가량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2016~2017년 1건에 불과했던 5000만원 이상 거래가 5건이나 이뤄지는 것으로 유추해 볼 때 평균 평단가는 5000만원 중반 이상 형성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중개사무소들에 따르면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매물은 여전희 품귀상태라는 평가다. 한 공인 중개사는 "매매물건은 사실상 거의 찾을 수 없다"며 "임대료는 경위 위치에 따라 3.3㎡당 25만원에서 30만원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다” 고 말했다.
◆주거지역의 상권화? 모두의 해결책은 될 수 없어
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자생적 노력으로 지역의 명소로 거듭난 익선동 한옥거리는 매력적인 사례이자 대안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리모델링되어 들어서는 한옥들 사이로 듬성듬성 남아있는 일부 주택들을 보며, 한때는 이 모든 곳이 누군가의 소중한 안식처이었던 편린도 지워지지 않았다.
주거지 사이로 구획되지 않은 상권들이 들어서면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거리들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도시재생의 미래와 과제가 무엇인지 익선동 골목을 걸으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본다.
글=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
정리= 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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