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에 따라 신기술 경쟁력 달라져
암호화폐 본질 부합하는 제도 생겨야
법조계 인사들과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모여 가상화폐(암호화폐)와 관련된 법적 주요 현안에 대해 짚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블록체인법학회 중간학술대회’에서다.
서울시 등이 주최한 'ABF in seoul 2018'의 한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는 현직 판·검사와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대학 교수, 회계사,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한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다.
블록체인법학회 초대 회장인 이정엽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개회사에서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이 나오면 그에 맞춰 제도와 법률이 따라가게 된다"며 "얼마나 관련 제도를 잘 활성화시키느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보다 더 경쟁력 있는 사회로 나아가느냐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혁신성장을 위해 법조계 인사들도 심도 있는 고민과 나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 방향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성준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블록체인의 중요성은 인지하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이상 블록체인은 발전할 수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코스닥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코스닥에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는 게 아닌 것처럼 암호화폐 시장도 산업 발전을 위한 자본 유통시장일 뿐"이라며 "암호화폐 없이 블록체인을 육성한다는 것은 코스닥 시장 없이도 벤처기업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의 자산 인식 기준 및 과세 부과 방안 연구 결과를 발표한 서동기 대전지법 회계사는 "암호화폐가 자산성이 있느냐는 논의부터 시작돼야 한다. 암호화폐는 현재 적용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정의하는 '자산'의 정의를 충족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암호화폐에 대해 "재무제표상 암호화폐를 어느 분류에 넣을지 고려할 때 성격에 따라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비현금성 금융자산' '재고 자산' '투자 부동산' '무형 자산'의 5가지 속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개념의 자산이기 때문에 재무제표상 어느 한 유형으로 분류되기보다 해당 암호화폐의 특성에 따라 복합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정립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종류의 암호화폐라고 해도 거래소마다 가격이 다르고 이에 따라 취득 가치나 매각 가치가 상이한 탓에 공정가치 산정이 어려워서다.
기존 법체계가 블록체인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도 제시됐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기존 법상 암호화폐 공개(ICO)를 진행할 때 구별해야 하는 것은 토큰을 사용한 서비스의 존재 유무"라며 "이미 서비스가 개발돼 토큰으로 해당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경우 본질적으로는 게임 머니를 구매한 것과 동일하게 해석된다"고 말했다.
토큰이 해당 서비스의 '이용권' 성격을 띠므로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된다는 논지다. 그는 "게임 아이템 거래를 '금융거래' 라고 하지 않듯 토큰 거래도 '전자상거래'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소셜커머스에서 선불 지불수단을 제외하면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되는 맥락과 유사한 해석이다.
구 변호사는 "문제는 토큰 판매 이후에 서비스가 출시된 경우"라며 "이 경우는 이용권 성격을 처음엔 띠지 않으므로 금융상품으로 계속 취급할 것인지의 여부는 결국 정부가 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디지털 토큰'이라 부르면 기존 법리와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올 1년 동안 정부가 섣부른 입법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도 생각한다. 각종 가이드라인을 갖추면서 법체계 구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해외 사례들을 참조해 암호화폐 본질에 부합하도록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현직 검사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관련해 형사법적 쟁점을 소개한 것도 이목을 끌었다. 김욱준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현행법에 저촉되는 것은 확실하게 처벌 받을 수 밖에 없다. 예방하려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꼭 알아야 한다"면서 "핵심적 부분을 속인 게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데 원인이 되는 부분을 속인 경우'에는 사기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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