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제대로 격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A(47) 씨는 전 남편 김 모(49) 씨의 폭력에 시달리다 두 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무력했고 A씨는 결국 전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26일 유족과 경찰에 따르면 첫 가정폭력 신고가 이뤄진 것은 2015년 2월 15일이다. 이날 김씨는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A씨의 외도를 의심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이날 오후 9시 20분께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천 원미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상해 혐의로 김씨를 현행범 체포한 뒤 긴급임시조치 1·2·3호를 모두 내렸다.
긴급임시조치는 피해자 거주지로부터 가해자를 퇴거 및 격리하는 1호, 피해자 거주지 또는 직장 등에서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2호,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한 접근을 금지하는 3호로 나뉜다.
이어 법원은 김씨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가 끊임없이 A씨 집 주변을 배회하며 협박한 것이다.
두 번째 신고는 이로부터 약 1년 뒤인 2016년 1월 1일에 있었다. 남편을 피해 거주지를 옮긴 A씨는 이날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 인근 거리에서 남편과 마주쳤다.
그는 공포에 떨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가 김씨를 피해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김씨에 대해 특별한 조처를 하지는 못했다. 현행법상 가정폭력 사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즉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일 뿐이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가해자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며 "법원의 명령을 위반했을 때는 과태료가 아니라 형사처분을 받게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로부터 행위자를 격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감호위탁' 제도의 맹점을 지적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가정폭력 가해자를 별도의 시설에 격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감호위탁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있지 않고 피해자 보호시설이 감호위탁시설로 지정돼있는 경우가 많아 감호위탁 처분이 내려져도 집행이 안 되는 실정"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감호위탁 처분만 제대로 해도 가정폭력의 재발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조사해 온 경찰은 김씨의 위치정보법 위반 혐의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A씨의 차량 뒤 범퍼 안쪽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달아 동선을 파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GPS를 통해 A씨가 새벽 운동을 나간다는 사실을 파악한 김씨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김씨는 흉기를 미리 챙겼으며 범행 당시 가발을 쓰고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폐쇄회로(CC)TV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김씨가 범행현장을 서성거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A씨의 세 딸에 대한 범죄 피해자 지원 조치도 나섰다. 경찰은 이들이 전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장례비와 긴급 생계비 집행을 신청한 상태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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