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t커머스 '공격 베팅'
"채널 잘 잡으면 매출은 오른다"
신세계TV 12번·SK스토아 4번
송출 수수료 연 200억원 이상 쓰며
지상파 인근 '비싼 채널' 확보
갈수록 비싸지는 송출 수수료
TV홈쇼핑 작년 1조3000억 지불
5년새 35%↑…올해는 더 오를듯
[ 안재광 기자 ] 이달 초부터 스카이라이프의 채널 12번을 누르면 ‘신세계TV쇼핑’이 나온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t커머스 채널이다. 방송계에서 채널 12번은 ‘S급 채널’로 불린다. 보통 지상파 채널에서 종합편성채널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어 리모컨 조작 시 잘 걸리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이프에선 11번이 MBC, 13번은 채널A다. 신세계TV쇼핑이 12번 자리를 꿰차면서 12번을 사용하던 전통 TV홈쇼핑인 홈앤쇼핑은 19번으로 밀려났다. 신세계TV쇼핑은 스카이라이프에서 12번 확보에 연 200억원 넘게 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쇼핑, t커머스에 황금채널 속속 내줘
t커머스들이 전통 홈쇼핑 채널을 밀어내고 ‘황금 채널’을 속속 확보하고 있다. t커머스는 TV홈쇼핑과 비슷하지만 녹화 방송을 하고 화면 테두리에 상품 정보를 표시하는 창을 노출해야 하는 등 일부 차이가 있다. 초창기엔 t커머스만 리모컨으로 상품을 주문할 수 있었다는 게 TV홈쇼핑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재 국내 t커머스 사업자는 10곳이다. GS홈쇼핑의 GS마이샵, CJ ENM의 CJ오쇼핑플러스 등 TV홈쇼핑이 운영하는 곳이 절반인 5곳이다. 나머지 절반은 KT의 K쇼핑, SK의 SK스토아, 신세계의 신세계TV쇼핑, W쇼핑, 티알엔 등 홈쇼핑 없이 순수 t커머스만 운영하는 업체들이다.
이들 t커머스는 지난해만 해도 방송에서 보기 쉽지 않았다. 대개 20번 채널 뒤에 자리잡은 탓이다. 지상파 채널 사이나 지상파에서 종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채널들은 전통 TV홈쇼핑이 차지하고 있었다.
돈 때문이다. 특급 번호를 받으려면 송출 수수료를 많이 내야 한다. TV홈쇼핑은 1년에 2000억~3000억원을 송출 수수료로 내고 있다. 10개 t커머스업체의 취급액(주문 총액)을 모두 합쳐봐야 지난해 1조8300억원이었다. 지난해 GS홈쇼핑 취급액(3조9221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비싼 ‘자릿값’을 내기엔 t커머스업체들의 규모가 턱없이 작았다.
그러나 올해부터 t커머스업체들이 달라졌다. 신세계TV쇼핑 K쇼핑 SK스토아 등 t커머스에만 몰두하는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SK스토아는 지난 6월 KT 올레tv에서 채널 4번을 확보하면서 홈쇼핑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채널을 놓고 막판까지 경쟁한 곳은 롯데홈쇼핑이었다.
당초 6번을 쓰던 롯데홈쇼핑은 KT 측이 송출 수수료로 두 배 가까이 요구하자 4번으로 옮기려 했지만 SK스토아가 과감한 ‘베팅’을 해 결국 30번으로 밀렸다. 30번은 원래 SK스토아가 쓰던 채널이다. SK스토아는 올레tv 4번 확보에만 연 300억원을 베팅한 것으로 전해졌다.
17개 채널 경쟁 ‘홈쇼핑 피곤증’ 호소도
t커머스가 공격적으로 베팅에 나선 건 ‘성장 잠재력’ 때문이라는 게 이들 업체의 설명이다. 기술 발달 등으로 t커머스가 홈쇼핑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채널만 잘 확보하면 급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t커머스업계 관계자는 “2012년 개국한 홈앤쇼핑이 취급액 2조원을 넘는 데 4년밖에 안 걸렸다”며 “채널 확보 싸움에서 이기면 투자비는 금방 뽑을 것”이라고 했다. TV홈쇼핑이든 t커머스든 TV를 시청하던 소비자가 채널을 넘기다가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판단이다.
다만 t커머스가 채널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송출 수수료가 비싸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이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송출 수수료 지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홈쇼핑 7개 회사가 지급한 송출 수수료는 1조3093억원으로 2013년(9710억원)보다 약 35% 많아졌다. 결국 송출 수수료가 그만큼 비싸졌다는 의미다.
올해엔 인상폭이 더 클 것으로 홈쇼핑업계에선 내다보고 있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경쟁이 심해지자 IPTV에서 20~70%의 송출 수수료 인상 요구가 있었다”고 했다.
채널이 많아지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홈쇼핑 피곤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엔 “홈쇼핑 채널 숫자를 제한하라”는 취지의 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홈쇼핑업체 7곳을 합하면 TV채널에서 쇼핑할 수 있는 채널은 총 17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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