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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서 생존하라 내몰았더니…기업 맞춤 R&D로 '세계최강' 연구소 된 프라운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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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70% 기업과제 등으로 충당
기업과 협업…정부 눈치 안봐
獨 전역서 기업 R&D 지원



[ 김낙훈 기자 ] 1787년에 태어난 프라운호퍼는 과학자다. 고품질 망원경을 개발한 현대 광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요즘 그의 이름은 세계 각국이 벤치마킹하려는 연구기관의 브랜드가 됐다. ‘프라운호퍼연구소’다. 디지털 음악을 대중화시킨 MP3 기술도 프라운호퍼가 개발했다.

최근 방문한 독일 아헨에 있는 프라운호퍼레이저연구소 입구에는 정밀 가공된 엔진 등이 전시돼 있었다. 건물 안에 있는 수십 개 방 창문을 통해 번쩍이는 불꽃이 새어 나왔다. 레이저 가공기로 정밀 가공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연구소의 레이저 가공은 세계적 수준이다. 안내를 담당한 연구원에게 “주 고객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밝히기 곤란하다”고 답을 피했다. 1시간 넘게 계속 질문하자 그는 “보쉬 지멘스 벤츠 BMW와 중소기업 등 200여 개 기업”이라고 답했다.

프라운호퍼는 비영리 정부 출연연구기관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받는 예산은 전체의 30% 수준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다른 기업과 공공기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따온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해 연구소를 운영하는 모델을 ‘프라운호퍼모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처음부터 이런 모델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80년 이전에는 정부 예산에 의존했다. 기업과 협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정부 눈치를 보고 예산을 따온 뒤 정부가 요구하거나 자신들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했다. 한국의 정부출연연구소와 비슷했다. 1980년 현재의 모델이 도입됐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라”는 취지였다. 이후 수십 개의 프라운호퍼연구소는 기업 과제를 따는 데 주력했다. 그래야 정부 예산도 받을 수 있었다. 몇몇 연구소는 적응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38년이 지난 지금 개별 프라운호퍼의 실력은 세계 최강으로 꼽힌다. 기업에서 과제를 수주하고, 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소는 기술을 축적하고 기업은 경쟁력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 덕이다.

프라운호퍼의 연구는 제조업에 머물지 않는다. 도르트문트에 있는 프라운호퍼물류연구소에서는 ‘물류 분야의 4차 산업혁명’에 이들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원부자재 입고에서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과정, 완제품 수송에 이르기까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해 원자재와 제품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기술을 기업과 공동 개발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루프트한자 SAP 등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드레스덴의 프라운호퍼세라믹연구소는 단순한 기술 개발뿐 아니라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도 해준다. ‘랩투팹(lab to fab)’이라고 한다. 프로토타입뿐 아니라 대량생산 기술까지 이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기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프라운호퍼가 독일 기업의 강력한 연구개발(R&D) 인프라가 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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