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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칼럼] 국정과제에 발목 잡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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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 재구성한 국정과제들
정책 전환,규제·노동개혁 막아
청와대가 '창조적 파괴' 나서야"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



[ 안현실 기자 ]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뭘 한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청사진을 만들어 내고,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던 위원회다. 밖에서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원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자리라면 모든 편견·고정관념을 버리겠다고 나와도 될까 말까 한데 전혀 그렇지 못한 일자리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위원회가 심의위원회인지 자문위원회인지 정체도 불분명한 데다 방망이나 두드리고 끝나는 ‘통과위원회’로 전락한 게 행정의 한계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얼마 안 돼 100대 국정과제를 확정한 순간부터 예견된 결과였는지 모른다. 국정과제라지만 ‘대선공약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폴리페서 등 권력 주변에 불나방처럼 모인 인사들이 한탕주의로 던진 공약, 시민·환경단체나 특정 이익집단이 표를 주겠다며 그 대가로 요구한 공약 등이 수두룩하다.

선거공약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거기서 나온 국정과제를 부처나 전문가로 구성한 위원회가 치열하게 검증하고 수정·폐기도 할 수 있어야 정상이다. 지금처럼 청와대가 국정과제를 절대 훼손해선 안 될 성역으로 떠받들며 관리하면 부처나 위원회는 국정과제를 집행하는 수족이나 들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정과제에 어긋나는 건 모두 적폐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이들이 다른 창의적 정책이나 아이디어를 제시할 이유도 없다.

그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핵심 국정과제란 이유로 정부가 ‘정책 전환’ 같은 얘기를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게 그렇다. 탈(脫)원전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장기적 탈원전 로드맵’이어서 우려할 게 없다”고 했지만 원전 생태계는 벌써부터 무너지고 있다. 탈원전은 또 다른 국정과제인 온실가스 감축과도 충돌한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정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모든 부담을 산업계로 떠넘기면 그땐 국내에 남아 있는 제조업체조차 사라질 공산이 크다.

국정과제는 규제개혁의 발목도 잡고 있다. ‘생명·안전·환경보호를 위한 규제혁신’ ‘신기술·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재설계’ 등 도무지 알 수 없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바꿔야 한다던 규제 방식을 두고도 알쏭달쏭한 ‘포괄적 네거티브’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대통령은 의료·금융·데이터 규제완화를 말하지만, 국정과제에서 의료는 ‘공공성’, 금융은 ‘은산분리’, 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가 각각 기조로 돼 있다. 이러니 정부 여당이 말하는 규제혁신 3법, 5법 등이 기업이 보기엔 ‘말장난’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일자리에서 앞서가는 국가들은 다 한다는 노동개혁도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국정과제 앞에서 설 땅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 ‘차별 없는 일터’ ‘휴식 있는 삶’ 국정과제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이 먼저 질식해 숨질 판이라는 얘기가 터져 나온다. 이런 국정과제가 사방에 널렸다.

고령화 속도, 4차 산업혁명의 ‘티핑 포인트’, 중국의 발전 로드맵, 잠재성장률 전망 등에 근거해 “한국에 남은 시간은 5년이 채 안 된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유연해야 할 건 기업만이 아닐 것이다. 변화 속도로만 보면 1년마다 새 정권이 들어와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다. 국정과제가 애물단지가 돼 버린 상황을 타개하려면 청와대가 ‘창조적 자기 파괴’ 선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권 내내 검증도 안 된 국정과제, 문제점이 드러난 국정과제를 붙들고 씨름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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