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 불씨 하나가 43억 태워버린 '고양 저유소 화재'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견된 사고
소형 열기구 허가 받고 날려야
위반 땐 200만원 벌금
1월 부산 삼각산 불도 풍등 때문
올 법 개정 이후 홍보는 손 놔
지자체선 매년 풍등 날리기
참가자들조차 불법 알지 못해
구입 쉬운 것도 안전 위협
[ 조아란 기자 ]
외국인 근로자가 날린 풍등(風燈) 한 개가 경기 고양시에서 발생한 재산피해 43억5000만원 규모의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안전불감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소방당국이 허가 없이 풍등을 날려선 안 된다고 법령까지 개정했지만 현장에서 “불법인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 태반인 만큼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다.
풍등은 알루미늄으로 된 뼈대에 얇은 종이 등을 씌우고 고체 연료에 불을 붙여 날리는 소형 열기구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지난 7일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에서 발생한 화재의 발화 원인으로 풍등을 지목하고 중실화(중대한 실수로 불을 냄) 혐의로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인 A씨(27)를 8일 긴급체포했다. 이 화재로 탱크에 있던 기름 440만L 중 260만L가 탔고, 불은 17시간 만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올해부터 시행된 소방기본법 제12조 1항에 따르면 풍등 등 소형 열기구 날리기는 ‘화재 예방상 위험 행위’로 간주돼 허가 없이 날리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적발되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법령이 개정된 것은 풍등이 불시착해 대형 화재로 이어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부산 삼각산 인근의 50만㎡를 태워 부산에서 두 번째로 큰 산불이었던 화재도 풍등의 불시착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법령이 개정된 뒤에도 일반 시민에게 허가 없이 풍등을 날려선 안 된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전년도와 다름없이 풍등 날리기 행사를 했다.
지난 5월 대구에서 대구불교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형형색색 달구벌 관등놀이’에서는 15만여 명이 참가해 풍등 2900여 개를 동시에 날렸다. 시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 연 행사였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었지만 축제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어디서든 풍등을 날려도 되는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축제에서 풍등을 날렸다는 김옥진 씨(34)는 “축제에 다녀왔다며 올라온 인터넷 커뮤니티 후기글에도 ‘다음 번에 가족들과 해변에서 날려봐야겠다’는 식의 내용이 많아 허가 없이 날리면 불법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정읍 청정메밀축제, 평창 효석문화제, 무주 반딧불축제 등 지난달 전국 각지에서 열린 축제에서도 풍등을 날리는 행사가 있었다.
어디에서나 풍등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안전불감증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찰에 붙잡힌 A씨도 “사고 당일 문구점에서 풍등을 산 뒤 호기심에 날려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현재 G마켓, 쿠팡 같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는 300~5000원만 내면 ‘풍등 날리기 세트’를 살 수 있었다.
소방당국은 “허가를 받지 않고 풍등에 불을 붙여 띄우는 행위가 불법이지 유통 자체가 규제 대상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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