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서 파격 변신
성폭행 위기서 자신 지키려다
전과자 된 백상아 役 맡아
공사장 난투극은 사전 약속 없이 액션
[ 노규민 기자 ]
노란 단발머리에 빨간 립스틱, 눈가의 다크서클, 가무잡잡한 피부에 잡티가 선명한 얼굴…. 몸에 딱 붙는 가죽치마를 입고 쭈그리고 앉아 담배까지 피워댄다.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 ‘미쓰백’에서 파격적으로 변신한 배우 한지민이다.
‘미쓰백’은 성폭행의 위기에서 자신을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가 학대당하는 아이 지은(김시아)을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는 이야기다. 그동안 청순 발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 온 한지민은 없다. 영화 속의 그는 겉모습부터 말투, 행동까지 거칠고 불량하다. 지은을 학대한 부모에게 거침없이 욕을 날리는 것은 물론 머리채를 잡고 뒹굴며 싸운다. 확 달라진 한지민을 만났다.
“맨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연기 변신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백상아라는 인물이 가엾고 불쌍해 상아와 지은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어렸을 때 (작품을) 만났으면 버거웠을지도 몰라요. 서른이 넘어 성격이 바뀌고 사람에 관한 관심과 궁금증이 생기면서 이런 역할이 어렵다기보다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생생하다. 한지민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이지원 감독과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상아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욕이나 흡연은 상아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라며 “사람답지 않은 부모를 두고 어떻게 욕을 안 할 수 있겠느냐. 애드리브로 (욕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담배는 ‘밀정’(2016)을 찍을 때 배웠는데 ‘미쓰백’ 촬영을 앞두고 여러 종류의 담배를 피워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냈다고 한다. 한지민은 “영화 시작 5분 만에 흡연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어색하면 백상아를 연기하는 나를 어색하게 볼 것 같았다”고 했다.
극 중 백상아는 세차장, 마사지숍에서 일한다. 집 청소도 열심히 한다. 뭔가를 닦는 일은 그가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 한지민은 “실제로 마사지해주는 걸 좋아한다. 손이 작지만 악력이 세서 주변 사람들이 늘 만족해 한다. 자부심이 있다”며 웃었다. 예쁜 모습도 포기했다. 거친 피부를 연출하기 위해 반사판도 최대한 배제했다. 백상아는 당당해 보이려고 진하게 화장하고 옷차림도 신경 쓰지만,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얼굴로 말해줘야 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 연기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상아는 어렸을 때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엄마에게 맞고, 결국 버림받았다. 전과자가 된 뒤엔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고 외롭게 살았다.
“실제로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상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찍는 내내 어렵고 힘들었어요. 원래 촬영팀과 빨리 친해지는 편인데 이번에는 3회차를 남겨 놓고 회식을 했을 정도로 온전히 상아에게 몰입했어요. 촬영 내내 상아로 살려고 했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공사장 싸움 장면이다. 백상아는 아동학대를 일삼는 지은 아빠의 내연녀 주미경(권소현)과 맨몸 액션을 펼친다. “촬영 전 유튜브에서 여자들의 싸움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하하. 서로 동작을 맞춰보지 않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상대 역인 소현씨가 주는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진짜 상아의 마음을 생각하며 ‘컷’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싸웠죠. 나중엔 저절로 악에 받친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한지민은 목이 많이 쉬어 있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초반에 일과 독박 육아에 지친 맞벌이 아내 서우진 역을 연기하면서 소리를 많이 지른 탓이다. 그는 “‘아는 와이프’가 ‘미쓰백’으로 오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 것 같다. 억척스러운 우진의 모습을 본 분들은 ‘미쓰백’의 백상아를 보고 덜 놀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렸을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작품 안에 녹아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지민이 자연스럽게 백상아에게 이입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관객들도 가급적 빨리 백상아에게 빠져 드셨으면 좋겠고요.”
노규민 한경텐아시아 기자 pre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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