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 김형민 역 김윤석
"왜, 있잖아. 대한민국에서 형사 역할 제일 잘하는 배우"
영화 '암수살인'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고,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곽경택 감독이 주인공 김형민 형사 역할을 고민했던 김태균 감독에게 한 말이다. 곽경택 감독은 영화 '극비수사'로 김윤석과 호흡을 맞춘바 있다. '극비수사'와 마찬가지로 '암수살인'에서도 김윤석을 형사 역할로 출연해 줄 것을 제안했다. '암수살인'과 '극비수사'는 사력을 다해 피해자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하지만 극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의 결은 다르다. 김윤석에 대한 믿음, 스토리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추격자', '거북이달린다' 등을 통해 형사 캐릭터를 선보였던 김윤석이 '암수살인'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차별화된 형사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았다.
영화 '암수살인' 개봉을 앞두고 마주한 김윤석은 "제가 형사 역할을 많이 하긴 했지만 아직 못해본 설정이 많다"며 "특히 이번 형사 역할은 제가 지금까지 했던 형사 중 가장 마음에 든다"면서 작품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 또 형사다.
제가 아직 서울 형사도 못해봤고, 최첨단 과학수사를 펼치는 형사도 못해봤다. 공무원에 가까운 형사를 주로 했다.(웃음) 본격적으로 범죄 집단을 일망타진하는 그런 멋진 형사는 한 번도 못해본 것 같다. 형사를 많이 했다고 하지만, 체감적으로는 한 번도 못한 거 같다. 무엇보다 '암수살인'이란 작품을 봤을 때 형사란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시대의 가장, 그런 모습이 부각된 작품이다.
▲ '암수살인'은 이전까지 수사물에서 보여줬던 형사의 모습과 다른 지점이 있다.
영화 자체가 담담하다. 그동안 수사물 장르에서 형사는 캐릭터가 강력하지 않나. 의리 있고, 육체적으로 파워풀하고. 그런 에너지를 요구하는 영화가 많았는데, 우리는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접근해가는 형사의 모습이다. 이걸 영화로 만들긴 쉽지 않을 거다. 그런데 시나리오 완성도도 높고, 그런 작품을 용케 제가 만나서 참여하게 됐다.
▲ '암수살인'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영된 내용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나. 방송을 실제로 봤나?
오래된 거라 IPTV에도 없었다.
▲ 공식 홈페이지 다시 보기로 무료로 볼 수 있는데…
아, 그건 몰랐다.(웃음) 그래서 감독님이 보내준 조각조각 영상들만 봤다. 보니까 경상도 출신인 제가 봐도, 경상도 말이 날아다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정말 특이한 케이스의 이야기고. 그걸 모티브로 재구성한 건 데 잘 정리된 것 같다.
▲ 실제 형사님이 촬영장에도 방문했다고 하더라.
2번 정도 오셨는데, 그냥 조용히 가만히 계셨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저도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인데, 범인을 쫓다가 경찰 순경까지 내려갔다고 하더라. 만약 범인에게 졌다면 지금도 순경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었다.
▲ 극 중 김형민은 부자고, 회사원처럼 정장을 입고 다닌다. 이것도 실제 모델에서 따온 건가.
부자라는 설정은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설정인 것 같다. 옷차림은 처음 감독님과 미팅을 했을 때 실제 형사님이 일반적인 점퍼 차림이 아닌 재킷이나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형사라는 얘길 들었다. 겉모습만 봤을 땐 형사인지 잘 모를 정도라고 하더라. 그렇게 사회적인 예의를 갖춘 옷을 입는다는 게 인상적이고, 개인적으론 더 마음에 들었다.
▲ '암수살인'에선 흔한 추격 장면도 없고, 신파도 없다.
그래서 더 좋았다. 감정을 그렇게까지 끌어 올리려면 충분한 이유와 설계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그냥 책상을 한 번 쳐주세요' 이러면 연기자 입장에서도 괴롭다. 가만히 생각해도 되는 거 아닌가.(웃음) 김형민이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 어떻게 보면 연기로만 승부를 보는 거 아닌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
테니스를 치는 것 같았다. 각 세트가 있고,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접견실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강태오(주지훈 분)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단서를 뽑아내는 과정에 집중했다.
▲ 주지훈과의 호흡은 어땠나.
주지훈 뿐 아니라 유아인, 변요한, 강동원 다 똑같다. 과장하면 조카같은 아이들이다. 전 굉장히 편하다.(웃음) 심지어 미성년자가 아니라 술도 한 잔씩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서로 아픔도 알고, 둘 만 있을 땐 함께 고락을 나누는 귀한 시간도 가졌다.
▲ 주지훈이 '김윤석 선배는 카스테라 같다'는 평을 했다.
웃기고 있네.(웃음) 독특한 표현이다. 제 스윗한 편을 봤다는 거 같다. 제가 좀 스윗하다. 주지훈 배우는 사석에서 연이 없었지만, 드라마 '마왕'을 보며 매력적이라고 느꼈었다. 작품을 하면서 보니, 하정우랑 친해 그런지 생각보다 능글맞더라.
▲ 주지훈은 사투리 연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본인도 전국의 사투리를 연기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 고충을 제가 잘 알았다. 사투리는 연습밖에 없다. 그래서 연습할 때 일부러 자리도 피해주고, 말도 덜 붙였다. 저도 이제 사투리 연기는 그만하고 싶다. 외국어 연기도 '도둑들' 때 중국어를 했는데, 손바닥에 적어가며 했다. 두 번 다시 하고싶지 않다.
▲ 주지훈에겐 사투리가 있었다면, 김윤석에게 '암수살인'을 하면서 힘들었던 연기는 뭔가?
접견실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굉장히 타이트하게 카메라가 들어오는데, 두 사람 모두 움직임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연기를 주고받았다. 공간 특성상 울림이 있어서 스태프도 모두 긴장 상태로 쥐죽은듯이 있었다.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다시 찍어야하니까 다들 집중해서 찍었다.
▲ 그렇게 힘들어서 주지훈과 진선규가 병원에 실려간 건가.
이번에 만난 애들이 몸이 약한거 같다.(웃음) 주지훈 씨는 위가 예민하더라. 긴장하면 복통이 있는 스타일이고. 진선규 씨는 기관지가 안좋은 것 같다. 지하 계단에 누워있는 부분을 찍느라 그랬다. 전 고참이라 눕지 않아 다행이었다.
▲ 액션이 없어서 그런 건가.
이번엔 달리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편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뛰는 건 이제 그만이다. 그동안 참 많이 뛰었다.(웃음) 액션도 그만이다. 더 재능있는 분들이 나와서 한국 영화를 빛내주시길 믿는다.
▲ '암수살인'에 애정이 큰 거 같다.
모든 작품이 그렇고, 애정이 많이 간다. 모든 작품은 메시지가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메시지를 영화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녹여내느냐의 차이인데, 그게 잘 어우러지면 웰메이드가 되는 것 같다. 작품성과 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잡는 것이 목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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