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일본 영화 ‘전차남’(2005)은 내성적이고 소심한 ‘오타쿠(オタク)’가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연애 경험이 전무한 오타쿠가 전철 안에서 희롱당하는 여성을 얼떨결에 구해주면서 벌어진 이야기다. 1980년대 등장한 오타쿠는 ‘한 분야에 집착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생활에 서툰 사람들’을 지칭했다. 영어로 괴짜를 가리키는 ‘geek, nerd’와 비슷하다.
오타쿠는 다소 긍정적 뉘앙스가 있지만, ‘히키코모리(引き籠り·은둔형 외톨이)’는 1990년대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됐다. 젊은이들이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이상 집안에 콕 틀어박혀 인터넷·게임에만 빠져 사니 그럴 만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freeter族=フリ-タ)’, 누에고치처럼 좁은 공간 속에 안주하는 ‘코쿤족(cocoon族)’ 등도 지난 20여 년간 일본 젊은이들의 특징이다.
2010년대 들어 오타쿠의 자식 세대인 ‘사토리(さとり) 세대’가 등장했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 달관’이란 뜻이다. 1990년대에 태어나 성장기에 본 것이라곤 ‘잃어버린 20년’의 불황뿐이어서 바라는 것도 없고, 별 의욕도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하는 지금의 20대를 가리킨다. 1985년생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2011)에서 그 특징을 내향적·배타적·비정치적이면서 그럭저럭 행복한 세대로 요약했다.
이들의 행동특성은 ‘바나레(離れ) 신드롬’으로 요약된다. ‘멀리하다, 떨어지다’란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바나레는 명사 뒤에 붙여 ‘~에서 떠난 상태’를 뜻한다. 자동차도 싫고(구루마 바나레), 술도 싫고(사케 바나레), 공부가 힘든 이공계도 싫다(리케이 바나레)고 한다. 연애나 결혼, 정치, 해외여행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체 자동차 소유주 중 30세 미만 비중이 2001년 14%에서 2015년 6%로 급감했다. 일본의 해외 유학생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적고, 시위현장에는 청년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심지어 외출(통근·쇼핑·운동 등) 횟수도 20대가 월평균 37.3회로, 70대(40.8회)보다 적을 정도다.
대신 이들은 최대한 저축해 유도, 검도처럼 ‘디플레도(道)’ ‘절약도’라는 말까지 생겼다. 일본이 구인난을 겪는 것도, 젊은이들이 굳이 힘들게 도전하지 않으려는 바나레 신드롬과 무관치 않다.
취업난이 극심한 한국 청년들에게는 다른 행성의 얘기로 들릴 법하다. 무언가 이루려는 의지와 치열함에서 두 나라 청년들의 차이가 크다. 축소지향형 일본인과 확장지향형 한국인의 차이일까. 그러나 저성장 고착화 속에 ‘N포 세대’가 돼가는 현실에서 공기업, 공무원 취업희망자는 점점 늘고 있다. 경제활력이 떨어지면 맨 먼저 청년들의 어깨가 처진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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