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thlee@hankyung.com
[ 이태호 기자 ] “과민한 행동이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내 연기금들이 최근 카타르 은행 정기예금과 연관된 머니마켓펀드(MMF)를 대거 환매하자 한 증권사 신용분석 연구원이 허탈해하며 한 말이다.
연기금이 앞장서 돈을 빼내면서 MMF 시장에는 환매가 일시에 몰렸다. 금융위기 가능성이 불거진 터키와 거래가 있는 카타르 은행 정기예금을 기반으로 만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국내 MMF들이 담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지난달 국내 MMF의 순유출 금액은 17조5000억원에 달했다.
환매가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막연한 불안감이 부른 집단행동이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ABCP 형태로 팔린 문제의 상품은 카타르 은행에 예금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불안이 가장 컸던 카타르국립은행(QNB)의 글로벌 신용등급은 ‘Aa3’로 국내 시중은행 중 가장 우량한 신한은행과 같은 수준이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자산분석실장은 “우량한 카타르 은행이 부도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연기금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 건 카타르 은행 ABCP 상품 자체의 신용 리스크보다는 ‘헤드라인 리스크’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헤드라인 리스크란 뉴스 보도 등에 시장이 휘둘리는 현상을 말한다. 카타르 은행 ABCP가 뉴스에 오르내리자 운용역들이 나중에 생길지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 MMF 투매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운용역들의 보신주의가 MMF 환매 사태를 몰고 왔다는 얘기다.
이런 책임 회피 동기는 운용역들에게 종종 상품의 내재 위험보다 강력한 처분 동기로 작용한다. 2010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자부담 문제가 불거지자 손해를 보면서까지 신용등급 ‘AAA’ 공사채를 투매한 배경에도 이런 이유가 자리잡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연기금 운용은 고객 이익, 즉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연기금 운용역들이 냉철한 분석과 판단으로 자산을 굴리지 않는다면 코스닥 테마주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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