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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축구는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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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축구는 양보이고 희생이다.” 거스 히딩크와 동갑내기(1946년생)면서도 매일 조기축구를 거르지 않는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의 축구 지론이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넘겨주는 게 축구라는 얘기다. 사실 이 말을 이해해야 축구를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축구가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 이어 또 한번 온 국민을 활짝 웃게 했다. 대표팀이 지난 주말 일본을 누르고 우승한 아시안게임 결승전의 지상파 3사 중계방송 시청률이 63.8%에 달했다. 모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했다.

축구 금메달이 값진 이유는 결과보다 그 드라마틱한 과정에 있다. 20명의 1990년대생 선수들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똘똘 뭉쳤다. 서로에게 헌신했고, 누구도 동료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감독도 예선전 패배를 자신 탓으로 돌렸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격언을 입증한 셈이다.

그 중심에 손흥민이 있다. 그의 병역특례는 해외에서도 관심사였지만, 그가 보여준 ‘양보와 희생’은 금메달로도 모자란다. 골 욕심을 버리고 수비 서너 명이 달라붙는 것을 역이용해 동료들을 도왔다. 수비에도 앞장섰다. 그의 어시스트 5개가 돋보이는 이유다. 팀 분위기를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기는 주장 역할도 만점이었다.

인상 깊은 장면은 일본전 연장 첫 골이다. 손흥민의 드리블로 찬스가 났을 때 이승우가 “나와, 나와” 하며 벼락 골을 성공시켰다. 손흥민은 “승우가 더 좋은 위치에 있었다”고 술회했다. 서열과 연줄이 엄존했던 한국 축구에선 드문 장면이다. ‘축구 신(新)인류’의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70억 지구촌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스포츠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원시성과 단순성, 협력성, 전투성, 예측불허성이 축구의 매력이다. 잔디 위에서의 축구는 원시시대 초원의 사냥을 방불케 한다. 눈앞에는 오직 이겨야 할 상대만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211개로 유엔 가입국(193개국)보다 18개 많다. 축구를 모르면 지구인이 아닌 셈이다.

축구는 11명이 각자 본분을 다하고 소통할 때라야 비로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감독은 그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도 같다. 이 때문에 “단순해 보여도 냉면처럼 그 맛을 내기 쉽지 않다”(정윤수 스포츠평론가)고 했다.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다. 빈민가 아이들도 재능과 노력만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공평한 게임이다.

축구는 인생과도 닮았다. 실수투성이에다 예측불허이고 새옹지마다. 협력, 양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축구에서 배운다. 축구 공은 서로에게 ‘공(功)’이 되고, 공통의 ‘목표(goal)’가 된다. ‘원팀(one team)’일 때 이길 수 있음을 축구 대표팀이 일깨워줬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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