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가치 연일 '사상 최저'
페소화 급락 쇼크…브라질·인도 통화가치도 '추풍낙엽'
신흥시장 불안에 亞 통화 출렁
印尼 루피아화 가치 20년來 최저
"달러 강세에 신흥국 빚 눈덩이"
[ 설지연 기자 ] 아르헨티나발(發) 금융 불안으로 신흥시장 통화가 다시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30일(현지시간) 페소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45%에서 60%로 1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세계 최고 금리라는 극약 처방에도 페소화는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브라질 터키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통화가치의 동반 하락을 불러오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이날 통화정책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 “환율 상황과 물가 추가 상승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8월 들어 두 번째, 올 들어 다섯 번째 인상이다. 전날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6월 합의한 구제금융 500억달러(약 55조6000억원)를 조기 집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페소화 가치는 사흘째 사상 최저치 경신 행진을 계속했다. 이날 페소화 가치는 장중 한때 15% 이상 떨어져 달러당 41페소까지 찍었다. 기준금리 인상 직후 가치가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달러당 38페소에 머물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30일(현지시간)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3억3000만달러(약 3665억원)를 매각했다. 이번주 들어서만 10억달러가 넘는 보유 외환을 팔아치웠으나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올 들어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가 50% 이상 떨어지면서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대외부채 249억달러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연 30%를 웃돈다.
블룸버그통신은 “해외 투자자들은 과거 10년 동안 예산 집행에서 포퓰리즘 행보를 보인 아르헨티나가 무역적자와 물가상승률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중도우파 정당 출신으로 2015년 취임 당시만 해도 연금지급 축소 등 재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여론의 저항에 부딪히자 다시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페소화 쇼크는 브라질,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정치·경제가 불안정한 신흥국 통화가치의 연쇄 하락을 부르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오는 10월 대통령선거 불확실성에 아르헨티나 여파까지 더해져 이날 달러당 4.146헤알로 장을 마감했다. 2016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파울루증시의 보베스파지수도 이날 2.5% 이상 떨어졌다.
터키 리라화 가치도 달러당 6.8리라까지 고꾸라졌다. 터키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인 에르칸 킬림치 부총재가 사임할 것이라는 소식이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도 이날 달러당 1만4750루피아까지 떨어졌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의 최저치다. 이날 인도네시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16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고, 증시는 1% 이상 하락했다. 인도 루피화 가치도 처음으로 달러당 71루피 선이 깨지며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강세를 띠면서 신흥국들이 불어나는 달러화 부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에릭 웡 채권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이 터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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