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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정영모 "옛 기억서 건져올린 고향 이야기… 화려한 색채 미학으로 풀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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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정영모 씨 한경갤러리 개인전


[ 김경갑 기자 ]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너머로 늙은 수유나무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원로 시인 신경림의 시 ‘고향길’에는 산업화, 핵가족화의 현실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애절한 기억이 녹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의 대상이자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지친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뛰놀던 들판이며, 미역 감고 물장구치던 개울 등이 아련히 떠오를 때면 가슴이 짠해진다.

중견 한국화가 정영모 씨(66)는 이런 고향에 대한 향수를 시각예술로 표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고향의 뒷산을 비롯해 늘 푸르고 향기 진한 소나무 등 가슴 한쪽에 간직한 ‘향수’를 심상의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 색채 미학으로 승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시작한 정씨의 개인전은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 30여 년 동안 열정과 끈기로 담금질한 고향의 미학을 한꺼번에 펼쳐 보이는 자리다.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고향 이야기’. 유년 시절 고향에서 보고 느낀 다양한 편린을 차지게 붓질한 근작 20여 점을 내걸었다.

중앙대 예술대를 졸업한 정씨는 오랫동안 자연과 고향을 모티브로 작업해 왔다. 듬직한 뒷산을 비롯해 초가집, 까치, 호랑이, 토끼, 꽃, 나무 등 어린 시절 추억의 곳간에서 빌려온 것을 한지나 닥종이 위에 이리저리 배열하고 알록달록한 색채와 붓놀림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작가는 “잘 작곡된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듯이 무의식 속에 잠재된 수많은 고향 이야기에서 예술의 원천을 뽑아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출품작들은 관람객에게 잠시나마 포근한 추억을 선사한다. 마을 뒷산의 원경을 색면으로 응축하거나 꽃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아득한 풍경, 엄마의 품속 같은 원형 구도로 수놓은 작품들은 세련되고 리듬감이 넘친다.

그는 “일상의 기억에서 출발한 산과 들, 호랑이, 나무 등과 같은 사물은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배치해 자연, 인간, 우주가 하나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향토 이미지를 동양적인 우주관으로 재구성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고향의 이미지는 고달픈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의 감정의 선을 잘 읽어낸다.

정씨는 작년부터 대상을 색면으로 단순화하거나 점묘 형태, 절제된 기하학적 구도로 응축하며 작업에 변화도 주고 있다. 자연 친화, 생명 존중 같은 동양적 가치를 도모하면서 한국적인 형태미를 살려보겠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코발트블루와 녹색, 노란색 등을 활용해 미니멀리즘을 장착한 신작들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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