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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잘리고 장사 망하고… "인력시장 요즘처럼 사람 많은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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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일자리만 매달리는 한국

남구로·성남 인력시장의 '눈물'

젊은층·중장년까지 몰려 나와
인력사무소 발디딜 틈 없어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 충격
임시·일용직으로 대거 내몰려
작년보다 구직자 30% 늘었다"

농장 가는 일꾼도 대부분 남자
50~60대 여성·노인들 '한숨'



[ 성수영/조아란 기자 ]
“코아작업(콘크리트에 구멍을 뚫는 작업) 한 명.”

지난 21일 새벽 5시 비가 내리던 서울 남구로역 앞. 길을 가득 메운 건설근로자들이 인력사무소장 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소장이 파란색 등산복을 입은 30대 중국인 남성을 가리키자 50~60대 건설근로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휴대폰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박모씨(55)는 “20년 넘게 막일을 했지만 비 오는 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날이 차츰 밝아왔지만 진을 치고 기다리는 사람 수는 좀체 줄지 않았다. 지난달 건설노동을 시작했다는 최성호 씨(60)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새벽 4시부터 인력사무소를 돌았지만 허탕을 친 것. 최씨는 “도봉구 방학동에서 운영하던 분식집을 폐업하고 막일을 시작했는데 젊은 사람들까지 인력시장으로 몰려와 나처럼 기술 없고 나이든 사람은 일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편의점으로 들어간 최씨는 1000원짜리 컵라면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빈손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일용직에 뛰어든 자영업자·아르바이트생

폐업한 자영업자와 해고당한 아르바이트생이 일거리를 찾아 새벽 인력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등의 여파가 컸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 있는 한 인력사무소 소장은 “식당을 운영하다 접었다는 사람, 주유소 아르바이트하다가 잘렸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통에 작년 8월과 비교하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족히 30%는 늘었다”고 말했다.

남구로 인력시장 일거리의 90%는 콘크리트 해체 작업 등 단순 건설노동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국인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근로자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생계가 막막해져 무작정 찾아오는 내국인이 급증했다. 이날 만난 최창현 씨(31)가 그런 사례다.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가게가 문을 닫아 지난 5월부터 여기 나온다”고 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배달 건설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졸업·중퇴 청년 취업자는 전체(330만1000명)의 7.7%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벌이가 확 줄어 ‘투잡’을 한다는 자영업자도 있었다. 서울 대림동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8)는 “장사가 안되고 인건비도 부담이라 주중 이틀은 가게 문을 닫고 일하러 나온다”며 “월급이 줄어든 아르바이트생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폐업해야 할 판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잃은 경제적 약자층이 ‘하루 벌이’를 위해 인력시장에 몰리지만 임시·일용직조차 올 들어 매달 평균 20만 명 안팎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

◆노인·여성부터 먼저 밀려나

같은 시간 경기 성남 인력시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성남 인력시장은 분당선 태평역부터 태평고개 사거리까지 120여 개의 인력사무소가 늘어선 거리를 말한다. 남구로역에 비해 서비스업 농업 등 업종이 다양한 편이지만 최근 무인화 바람이 불면서 활기를 잃고 있다.

그나마 뜸하게 오는 인력사무소 승합차는 젊은 남성과 기술자만 태워갔다. 이모씨(67)도 이날 시설채소 농장에 가려고 대기했지만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씨는 “원래 농장에 가는 일꾼 중 대부분은 50~60대 여성이었는데 요즘은 젊은 남자가 많이 간다”며 “인건비가 올라 일손이 부족해지니 힘 좋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노인빈곤 문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제조업 등 ‘좋은 일자리’에서 밀려나 단순노무직에 뛰어드는 중장년층이 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노인과 여성부터 퇴출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만난 근로자들은 하나같이 “갈수록 사정이 나빠진다”고 호소했다. 남구로역 인근에서 만난 한 노인은 “여름에 바짝 벌어서 겨울을 나야 하는데 생계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로=성수영/성남=조아란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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