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위력행사 정황없다" 무죄 판결
'미투=무고' 프레임 위축 불가피
수행비서 김지은 씨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여론 또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이 법원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안 전 지사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간음·추행 때 위력행사 정황이 없다"면서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개별 공소사실을 두고는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김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며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무죄의 이유를 들었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의 뒷받침이 부족하다.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는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안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사건 결심공판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던 안 전 지사가 헌신적으로 일한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한 중대범죄"라며 징역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안 전 지사에 무죄를 선고하자 김지은 측 변호인단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변호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굳건히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며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앞서 마지막 공판 최후 진술에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피고인과 그를 위해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에 괴로웠다"면서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내가 유일한 증거인데 내가 사라지면 피고인이 더 날뛰겠구나 생각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길이라 생각해 생존하려 부단히 애썼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던 바 있다.
하지만 계속된 공판 과정에서 김 씨 측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증언들도 있었다.
안 전 지사 부인 민주원 씨는 남편 재팜의 증인으로 출석해 김 씨가 남편에 대해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새벽 4시에 부부 침실에 들어오기도 하는 기행을 범했다고 폭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누군가 안 전 지사에게 '2차를 기대할게요'라는 문자를 보낸 것을 착신전환으로 확인하고 불미스러운 일을 막으려고 침실 입구를 지키다가 잠이 든 것"이라고 다소 알쏭달쏭한 해명을 했다.
안 전 지사 변호인 측은 김씨의 행동이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의 패턴과 달랐음을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범행 전후 피해자는 업무를 잘 수행했으며 최초 간음 피해를 입은 후 안 전 지사와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도 '지사님이 고생많으세요' '쉬세요' 등으로 위협적인 대화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와 친분이 두터운 증인 성 모 씨가 공판에 출석해 김 씨와 주고받은 온라인 메신저 대화의 의미 등을 증언한 것도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 더했다.
성 씨는 김 씨가 지난해 7월 러시아, 9월 스위스 등 안 전 지사의 외국 출장 수행 도중 자신에게 보낸 문자에서 'ㅋㅋㅋㅋㅋ' 등으로 웃음을 표현한 것에 대해 "김 씨는 기분이 좋을 때 히읗과 키읔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성씨는 “김씨가 스위스 출장 마치고 귀국한 뒤 ‘몰라요. 헤어짐요.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차피 서로 안될 사람인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대상이 누군지는 김씨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김씨가 대선 본선캠프에 근무할 때 어떤 유부남 선배가 추근거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팀을 옮겨줬음에도 가끔 유부남이 김씨에게 연락한다고 해 연락을 끊으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이들 2차례 출장에서 김 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저지른 혐의를 받아왔다.
김 씨는 스위스에서 돌아온 9월 중순에는 '내 사장(안 전 지사)은 내가 지킨다',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보직이 바뀐 12월 중순 '큰 하늘(안 전 지사)이 나를 지탱해주니까 그거 믿고 가면 된다' 등 메시지를 보냈다고 성 씨는 전했다.
김 씨가 안 전 지사를 이성으로 바라봤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성 씨는 "그렇다기보다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심이나 존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런 여러 정황 증거로 재판부가 안 전 지사 변호인단 측의 "비서 김지은 씨가 허위진술을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봤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김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는 관측이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고개를 숙였다.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에도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king****'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안희정은 정치적으로 끝났다. 성폭행은 아니더라도 불륜인 것은 맞기에 도덕적으로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tiff****' 또한 "무죄라고 무죄는 아니다. 이미 안 전 지사의 이미지는 땅으로 추락했다"고 꼬집었다.
"이게 나라냐"며 정치적인 세력이 판결에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에 'nadf****' 아이디의 네티즌은 "판사가 무슨 이유로 안희정 편을 들었겠나. 가뜩이나 국민 이목 쏠린 재판인데. 검찰이 제대로 입증 못했던가 비공개 재판 내용중 뭔가 있었겠지"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불륜을 미투로 만든 정치공작 (0715****)", "둘다 많은걸 잃었다. 욕정이란게 무섭다 (dili****)" 등 김 씨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다.
'zata****'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이건 김지은 씨가 100%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 성폭행이라는 명확한 자료도 없고 계속 ?아다니고, 다른사람이 안희정 수행하기 싫다니까 '대신 가줄까?' 이런 말이나 했다고 하니 법원에서 성폭행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나? 성폭행 당했다면 당한 즉시 경찰서를 가서 신고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패소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다"고 냉정하게 조언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고발의 첫 1심 판결이었던 이번 선고 이후 '미투=무고'라는 프레임이 형설될 경우 미투 고발하려는 피해자가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제기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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