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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일제가 연출한 경성박람회… 속내는 문화 우월성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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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관중

한국미술연구소 근대시각문화연구팀 지음
한국미술연구소CAS / 304쪽│2만원



[ 서화동 기자 ]
영화 ‘신과함께-인과연’이 흥행 신기록을 세우면서 연일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영화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적인 사랑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영화에 열광하게 됐을까. 조선에 활동사진(영화)이 처음 선보인 것은 1890년대 말로 추정되지만 상영관을 설치해 제대로 운영한 것은 1903년 한성전기회사가 동대문 안 기계창에 만든 동대문활동사진소가 시초였다. 당시 활동사진은 스토리가 있는 영상이 아니라 외국의 자연과 진기한 신문물, 사건 등의 영상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그런데도 동대문활동사진소와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이 설치한 최초의 극장 협률사 등에는 활동사진을 보러 온 남녀노소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황성신문은 전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한편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유성영화가 등장한 1920년대 이후엔 그 열기가 더했다. 1930년 당시 경성(서울)에는 10여 개의 상영관이 있었는데 상영관별 연간 관객이 2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당시 경성 인구 70만 명이 연간 3회 이상 극장을 출입했다는 얘기다. 즐길거리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때였으니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참 대단한 관람 열기였다.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관중》은 일제강점기 시각문화가 관람, 매체, 전시 시설 등을 통해 공공화하고 대중화하는 양상과 이를 소비하는 관중의 출현을 다룬 책이다. 공진회 박람회 등 공공적 관람 제도의 등장, 도시 경관의 재형성, 미술관과 갤러리의 등장, 간판·쇼윈도·영화관 등 상업공간의 발달 등과 더불어 근대적 관중이 어떻게 탄생하고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경성을 주된 대상으로 한 것은 일제에 의한 식민지 수탈의 중심이자 이른바 ‘문명개화’의 근대를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전근대사회였던 조선에 근대적 문명을 이식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각종 근대적 시각문화를 급속히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이를 위해 박람회, 전시회, 극장, 갤러리 등의 공공적 관람시설, 즉 공람시설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주로 소규모에다 실내에 머물던 관객들을 대규모 공공장소로 끌어낸 것은 박람회였다.

조선에 본격적인 대규모 공람시설이 등장한 것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근대 일본의 문명개화와 물산을 선전하려고 1907년에 연 ‘경성박람회’였다. 9월1일부터 45일간 지금의 을지로입구인 구리개 대동구락부 자리에서 열린 경성박람회에는 무려 9만9000여 점이 출품됐다. 일제는 관람객 유치를 위해 매체를 통한 홍보, 각종 할인 등의 지원책 등을 써가며 열을 올렸다. 그 결과 당시 경성의 전체 인구에 가까운 20만여 명이 박람회를 관람했다. 하지만 전시품의 94%는 일본인이 출품했고 조선인이 낸 전시품은 그나마도 1차 산업 위주여서 일찍 근대화를 이룬 일본과 조선의 산업적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여줬다. 결국 경성박람회는 일본의 상권과 자본이 경성에 침투하는 시발점이 됐다고 책은 지적한다.

1915년 9~10월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는 조선총독부의 통치 5주년을 맞아 식민권력이 통치와 훈육의 시선으로 연출한 행사였다. 공진회를 위해 경복궁 근정전 앞 홍화문과 영제교가 헐리는 등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이던 많은 표상물이 해체돼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문명화된 근대적 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공진회 관람객은 116만여 명. 경성에서만 19만 명 가까이 관람했다. 경성부민 25만 명 중 병자와 노약자, 유아를 빼고는 다 봤다고 한다. 일제는 1929년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조선박람회’로 또 한 번 식민통치의 성과를 과시했다.

1920~1930년대 일본인 중심의 남촌 지역에 들어선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다 백화점과 조선인이 운영하던 동아백화점, 화신백화점 등의 쇼윈도는 경성의 시각 이미지를 바꿔놓은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쇼윈도는 욕망의 진열장이자 물신(物神)이 거주하는 ‘상품의 신전’이었다. 하지만 같은 경성에서도 남촌과 북촌의 쇼윈도에는 차이가 현격했다. 또한 부자와 빈자, 도시인과 시골 사람, 소비자와 노동자의 차이를 민감하게 내포한 장소였다. 이 밖에 신문과 잡지 등 인쇄매체의 삽화와 사진, 그림 등을 통한 시각 이미지의 변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미술연구소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형성된 시각문화의 근대적 성격을 조명한 ‘한국근대미술 시각이미지 총서’(전3권)의 1권이다. 일제강점기 미술가 양성과 등용 및 활동을 살펴본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창작》, 대중매체의 광고와 만화 속 의식주 관련 복제 이미지를 통해 당시 서울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재구성한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일상》도 함께 출간됐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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