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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처럼 흩뿌려진 신비의 섬들, 완벽한 단절 원한다면 천국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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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남태평양 피지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의 제목이 지금 기억으로 ‘멀고 먼 푸른 바다(The Ocean)’였던 것 같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했다. 남태평양의 한 젊은 원주민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었는데, 사실 내용 면에서는 별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화가 지금도 내게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장면마다 남태평양의 꿈같은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본 뒤부터 줄곧 내 마음속에는 남태평양의 그 투명한 물빛과 아름다운 해변이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됐다.


320여 개의 크고 작은 화산섬으로 이뤄진 피지

우리는 실로 자기 마음속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항상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 또한 학창시절에 품기 시작한 그 꿈을 이룰 기회를 잡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먼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남태평양에는 낙원처럼 느껴지는 많은 섬이 있다. 그중 하나로 우리에게 이름만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곳이 있다. 누구든지 만나면 먼저 블라(Bula!: 안녕)를 외치고 상대편 또한 불라!로 화답하는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나라 피지가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는 투명한 햇살 아래 꿈같은 바다와 젊음의 낭만, 그리고 때묻지 않은 대자연의 속삭임이 있었다. 어릴 적 동심의 세계에 꿈을 심어주면서 말로만 들어오고 영상으로만 접해온 그 환상의 남쪽 먼 바다. 그 보석처럼 투명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오랜 꿈이 현실로 다가옴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곳 피지는 주섬인 비티레부를 비롯해 320여 개의 크고 작은 화산섬으로 이뤄져 있다. 면적은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한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이곳 남태평양의 여러 섬나라 중에서는 제법 큰 나라다. 그래서 ‘남태평양의 십자로’라고 불린다. 옛날 이곳이 서양에 처음 알려질 때만 해도 식인종이 사는 곳이라고 했지만 이젠 다시 천국에 비유하고 있다. 인구는 75만 명쯤 되는데, 원주민이 48%, 인도인이 46%, 그리고 나머지는 유럽인과 중국인이다. 인도인이 이렇게 많은 것은 영국 통치 시절에 이곳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인도인을 대거 이곳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도인은 원주민보다 뛰어난 상술을 발휘해 오늘날 이곳 주요 상권을 거머쥐게 됐고, 그것이 오늘날 원주민과의 마찰을 불러일으켜 인종 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산호초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마나섬

남국의 낭만을 가득 싣고 이 섬 저 섬을 오가는 유람선을 타면 누구나가 한 번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리조트 아일랜즈라고 불리는 마마누다 제도 중 최대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마나섬이다. 난디 바로 옆 라우토카에서 유람선을 타고 이렇게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두 시간쯤 흘러서 그 마나섬에 닿았다. 이곳은 비취색 맑은 물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곳이나 백사장이 있는 해변에다 윈드서핑에서 스쿠버 다이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또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야자수림 속 ‘부레’에서 다소 비싸기는 해도 며칠이고 머물 수도 있으며, 해변가에 마련된 뷔페 식당은 끼니때마다 손님을 불러들이고 있어 그 투명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남국의 음식을 먹는 것도 기분 좋은 것 중 하나가 된다.

모든 면에서 불편함 없이 잘 준비된 마나섬이지만 그 어디를 봐도 자연에 거슬리는 것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백사장에 촌스러운 각종 음료 광고의 비치파라솔 하나 없는 것을 비롯, 외관상의 콘크리트 건물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비취색 바다와 야자수들, 각종 해양 스포츠 도구, 요트, 그리고 사람들밖에 없으며, 들려오는 것이라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스쳐가는 바람소리뿐이다.

사방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런 리조트 섬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본 섬인 비티레부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니 수평선 끝까지 확 트인 시원스런 바다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눈앞에서 옅은 녹색을 띤 투명한 바닷물에 여기저기 거뭇한 것들이 흩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바다 색이 갑자기 짙어진다. 처음에 저 거뭇한 것들이 무엇일까 했는데 알고 보니 산호였다. 이쪽의


브룩 실즈의 ‘블루라군’으로 유명해진 곳

피지의 수도는 본 섬인 비티레부 남쪽에 있는 수바라는 곳이지만, 외국인이 자주 찾는 관문은 국제공항이 있는 북쪽의 난디라는 곳이다. 수도인 수바는 천연의 항구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해도 1년 내내 비가 오거나 아니면 습기가 많은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곳이고, 난디는 연중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 리조트 시설이 난디 부근에 몰려 있다. 또 주변 여러 환상의 섬을 찾아가는 유람선들도 이 부근을 기점으로 왕래하고 있어 관광객들은 난디로 몰린다.

피지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주변에 아기자기한 많은 섬이 있기 때문이다. 피지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유람선을 타고 섬들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 섬들은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생겨났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파도에 밀려온 모래가 쌓여 이뤄진 섬들이다. 많은 섬 중엔 단 두 그루의 야자수와 백사장만으로 1분 안에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곳에서부터 왕년의 영화배우 브룩 실즈가 출연한 ‘블루라군’으로 유명해진 야사와 제도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류가 다양하다. 이런 섬들 중에는 무인도도 있지만 대부분의 섬에는 피지 전통 양식의 ‘부레(숙소)’를 비롯해 여러 리조트 시설을 갖추고 있어 쾌적한 상태에서 남국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섬들을 찾아 떠나는 유람선 여행은 피지를 찾는 이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찌든 문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파 훌훌 털고 잠시 떠나온 사람들, 더 맑은 자연의 품에 안겨 남국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그리고 나같이 역마살이 낀 사람들…. 그 모두가 넓고 푸른 바다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유람선의 갑판에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모든 것을 잊고 자연과 더불어 있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하나가 되고 피지안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악기를 연주하던 한 피지안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내게 묻는다. ‘코리아’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국 가요 ‘사랑해’가 연주되면서 노래가 나온다. 노래를 들으며 모두가 분위기에 취한다. 남국의 뜨거운 태양은 우리를 검게 그을리게 하고, 환상의 섬은 꿈처럼 다가왔다.

해변을 ‘코럴 코스트’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름 그대로 ‘산호초 해안’인 것이다. 이 지역은 밀물 때가 돼도 바닷물의 깊이가 사람 키를 넘지 않지만 산호초가 없는 곳을 경계로 수심이 갑자기 깊어진다. 저 깊은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들이 이 산호초에 부딪혀 끊임없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대전차 군단이 몰려오는 듯하다.

전화, 냉장고 하나 없는 때묻지 않은 자연

코럴 코스트를 따라서 요소요소에 많은 리조트 시설이 들어서 있다. 가는 곳마다 원주민 부락의 한가로운 모습과 리조트 시설에서 편히 쉬는 사람들밖에 없어 고요하기만 하다. 오로지 들려오는 것은 저 멀리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 피지는 리조트 중심의 관광지다. 떠들썩한 시가지도, 고색창연한 문화 유적지도 없다. 볼거리라고는 오로지 때묻지 않은 자연밖에 없다.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 리조트 ‘탐부아 샌드’에 들렀다. 이곳은 유럽인이 많이 찾는 꽤 괜찮은 리조트인데도 방 안에 전화, 텔레비전, 냉장고 등 현대 문명의 이기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놀랐다. 사장의 말인즉,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와 단절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만은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편히 쉬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넓고 푸른 바다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고, 기이한 모양의 산호초 사이를 누비면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친구하고, 야자수 그늘 밑에서 책을 읽다 오수를 즐기고, 황홀한 석양빛에 취하다가 ‘메케’라고 하는 원주민의 춤과 노래를 듣는다. 매일 이런 시

들로만 짜여진다면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한 휴식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섬마다 전설이 있지만 특히 피지에는 독특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위대한 신의 가호를 받아 행복의 상자를 운반하던 배가 마나섬 근처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그러다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버리던 중 잘못하여 행복의 상자도 그만 다른 짐에 섞여 버려지고 말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신의 노여움을 사기 전에 상자를 찾으려고 2명의 용감한 청년이 배를 떠났다. 마나섬 부근에서 두 사람은 거대한

바다뱀과 마주쳤다. 그 바다뱀은 마나섬의 신이었는데 행복의 상자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다뱀에게 상자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바다뱀은 이렇게 말했다. “한번 마나섬을 방문한 자는 다시 떠날 수 없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행복의 상자가 여기 있는 한 피지 사람들은 ‘환대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그 후 마나섬은 피지의 성스러운 섬이 돼 이곳을 방문한 자는 마법에 의해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고 한다.

천국의 섬을 떠나오는 길에 비나카(Vinaka!: 고맙습니다)라는 원주민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전설처럼 언젠가 다시 올 것을 다짐하게 된다.

피지=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여행 메모

대한항공이 인천에서 피지의 난디국제공항까지 직항으로 운항한다. 10시간가량 걸리며 5~12월이 여행 최적기다. 피지에서는 피지달러만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피지달러로 바로 환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미국달러로 환전한 뒤 피지에서 피지달러로 환전해야 한다. 환전은 공항, 은행, 섬 내 사설환전소, 호텔, 면세점 등에서 할 수 있다. 240V/50㎐로, 220V용 가전제품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으나 노트북을 비롯한 정밀기계는 변압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

호텔이나 리조트 내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지만 고가여서 주로 시내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는 게 좋다. 피지는 치안이 양호한 지역은 아니므로 여행 시 신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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