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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남 바이오메트로 대표 “피 한방울로 5분 질병진단…中·美 등 해외 진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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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술 활용한 면역진단기기 ‘루시아’ 개발
“핀란드 학자의 연구성과 이어받아 사업화”





“피 한방울로 5분만에 병에 걸렸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면역진단기기 ‘루시아’를 개발 중입니다. 현재 병원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체외진단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이보다 훨씬 빠르죠. 진단에 필요한 피의 양이 적어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어요.”

강길남 바이오메트로 대표(54)는 회사의 핵심 사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강 대표는 “현재 일선 병원에서는 면역진단을 할 때 효소면역분석법(ELISA)을 가장 널리 활용하는데 루시아는 이보다 발전한 전기화학발광법(ECL)을 쓴다”며 “두 검사의 정확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격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루시아를 CRP(염증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측정하는 단백질의 일종) 측정 용도로 시판허가 받았고 미국 중국 등 진출도 준비 중”이라며 “미국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앤드설리반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체외진단시장 규모는 약 70조원이고 그 중 면역진단의 규모가 가장 커 시장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유럽 시판허가는 따로 임상시험을 한 것은 아니고 기존에 허가 받은 의료기기와의 기능 동등성을 입증함으로써 받았다.

강 대표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에서 1987년 경제학 학사, 1989년 경영학(오퍼레이션 리서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뱅커스트러스트 한국지사 기업금융상품개발팀장, 모건스탠리 이사(아시아 담당), 파라마운트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을 지냈다. 바이오메트로를 창업한 건 2016년이다.

강 대표는 “티모 코펠라 투르크대 명예교수 등 핀란드 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20년 이상 해왔다”며 “강충경 전 호서대 나노바이오트로닉스학과 교수의 소개로 약 5년 전 이들을 만나 협력하기로 뜻을 모으고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회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핀란드에서 연구를, 한국에서는 사업화를 하는 식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루시아는 본체와 일회용 카세트로 구성돼 있다. 카세트에 특수용액과 섞은 피검자의 피를 한방울 떨어뜨린 뒤 이를 본체에 넣어 질병 감염 여부를 분석한다. 카세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카세트 종류별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이 다르다. 유럽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건 본체와 CRP 검사용 카세트다. 다른 질병 진단용 카세트도 속속 개발해 허가신청을 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한 카세트로 수십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의사에게 질병 감염 여부 확인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컨대 카세트에 10개 질병 감염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판단 지표(바이오마커)를 각 1개씩 넣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1개 질병과 연관된 마커를 10개 넣는 게 낫다는 것. 그는 “의료현장에서는 하나의 질병이라도 정확히 진단하는 걸 원하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판별 정확도는 마커별로 다르며 각 마커별 수치는 비공개다.

강 대표에 따르면 루시아의 핵심 기술인 ECL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검사를 하기 위해 먼저 발광물질이 붙어 있는 항체를 특수 제작해 이를 피검자의 피와 접촉시킨다. 피검자가 병에 걸렸으면 피 속에 항원이 들어있기 때문에 항원·항체 결합 반응이 일어난다.

이후 결합 항체에 전자를 쏘면 항체에 붙어 있는 발광물질이 전자와 만나 광전자를 내뿜는다. 광전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측정하면 항원·항체 결합 반응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발광물질은 주로 희토류에서 추출한다. 항체는 쥐 닭 등 동물에서 키워 추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이오메트로는 핀란드의 항체 전문회사에서 구입한다.

결론적으로 광전자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측정함으로써 피 속에 항원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는 피검자가 병에 걸렸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반면 피검자가 병에 안 걸렸으면 피 속에 항원이 없기 때문에 항체와 결합하지 않고 세척과정에서 모두 제거된다. 그러면 광전자가 검출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루시아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광전자 측정 절차를 60회 반복한다. 그 결과를 의사가 보고 질병 감염 여부를 판독한다. 강 대표는 “기존에 널리 쓰이던 면역진단 장비는 감광원리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는데 레이저와 다수의 렌즈가 필요하기 때문에 크고 비싸다”며 “ECL을 활용하면 이런 단점을 개선하면서도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CL을 활용한 체외진단기가 이전에 없었던 건 아니다.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만든 ‘코바스(cobas) 6000’이 있다. 두 기계는 다른 방식으로 ECL을 활용한다. 로슈 제품은 ‘A-ECL’ 방식이다. 먼저 원심분리를 통해 피검자의 피에서 항원만 뽑아낸다. 이를 철 성분과 발광물질이 붙어 있는 항체와 결합하는 전처리를 한다.

이후 전처리한 물질을 분석기 안에 넣는다. 분석기 안에는 백금이 입혀진 금속판이 있고 그 뒤에 전자석이 있다. 전자석에 전류를 흘려 양극을 생성하면 철 성분 때문에 결합 항체가 끌려와 금속판 위에 붙는다. 이 상태에서 발광물질이 광전자를 방출하도록 해 이를 측정함으로써 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판독한다.

반면 루시아는 ‘C-ECL’ 방식을 쓴다. 먼저 피검자의 피와 특수 용액을 섞은 뒤 스포이드를 활용해 카세트의 특정 부분에 떨어뜨린다. 이 부분에는 여과막이 있고 여과막 위에는 특정 항원과 결합력을 가지는 항체가 있다. 피검자에게 병이 있으면, 다시 말해 피 속에 항원이 있으면 이 항원이 항체와 결합해 여과막 아래로 내려간다. 여과막은 결합 항체만 통과시키고 백혈구 등 다른 건 걸러낸다.

결합 항체가 여과막을 통과하면 실리콘웨이퍼 위로 떨어진다. 이 실리콘웨이퍼 위에는 해당 항원과 결합하는 성질이 있는 또 다른 항체가 심어져 있다. 여과막을 통과해 내려온 결합 항체는 실리콘웨이퍼에 심어진 항체와 다시 결합한다. 이렇게 되면 두 항체가 하나의 항원을 매개로 이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결합 항체는 실리콘웨이퍼 위에 고정된다.



이후 카세트 안에 들어 있는 특수 용액이 실리콘웨이퍼 위를 씻어낸다. 결합 항체는 실리콘웨이퍼 위에 고정돼 있기 때문에 씻겨나가지 않는다. 나머지 불순물은 없어진다. 이후 실리콘웨이퍼 아래에서 전자를 밀어올려 여과막 위에서 내려온 결합 항체에 가서 닿도록 한다.

이 결합 항체에는 발광물질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전자와 만나면 광전자를 방출한다. 광전자가 얼마나 방출됐는지를 측정함으로써 항원·항체 반응이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알아낸다. 이를 통해 질병 감염 여부를 판독한다. A-ECL은 양극을 활용해 결합 항체를 끌어당기고 C-ECL은 음극을 활용해 전자를 실리콘웨이퍼 위로 밀어올린다는 점이 큰 차이다.

강 대표는 “로슈의 장비에는 전자석, 백금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이 수억원에 달하고 크기가 크다”며 “사용 뒤 내부를 씻어내야하기 때문에 관련 비용이 추가로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루시아는 이보다 훨씬 저렴한 수백만원에 판매할 예정”이라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기도 작다”고 말했다.

카세트가 일회용이기 때문에 별도의 세척 비용도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대표는 “로슈의 장비는 20명 이상의 피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긴급하지 않은 대단위 건강검진에는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며 “루시아는 작은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한 명을 빠르게 검사해야하는 응급실도 루시아의 잠재적 수요처다.

강 대표는 “심장질환, 폐혈증, 독감 등 응급 치료가 필요한 병의 카세트를 우선적으로 개발해 시판할 계획”이라며 “응급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립선 관련 질병은 전립선특이항원(PSA) 하나만 측정하면 되기 때문에 루시아로 발병 여부를 판별하기가 쉬워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검사법으로 판별할 수 있는 마커는 약 350개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들 마커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다. 2개 이상의 질병 확인에 중복 활용되는 마커도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의료현장에서 350개 마커를 다 확인하려는 수요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들 마커 확인용 카세트를 전부 만들지는 않을 계획”이라며 “다만 직접 만들지 않은 카세트를 다른 회사가 ‘우리가 만들어보겠다’고 요청을 하면 라이선스를 판매할 생각은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진단 외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강 대표는 “지금은 음식이 식중독균에 감염됐는지를 판별하기 위해 최소 3일이 걸렸다”며 “현장 측정용 소형 기기도 있지만 이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동물 전염병도 별도의 검사시설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판별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강조했다.

반면 루시아를 이용하면 현장에서 감염 여부를 빨리 판별할 수 있다고 강 대표는 주장했다. 그는 “신약 개발을 할 때 루시아를 활용하면 후보물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빨리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용도로도 응용할 수 있을 것”며 “치명적 세균을 활용한 생물무기를 방어하는데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해외에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중국은 땅이 넓고 작은 마을이 많기 때문에 보건소가 전국적으로 약 100만곳에 달한다”며 “이들 보건소에 루시아를 보급하기 위해 합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과학원지주회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메트로는 돈을 내지 않고 기술로만 출자한다. 이달 중으로 설립 논의가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강 대표는 “중국의 변방 국경에 배치된 군인들을 위해 현지에 루시아를 보급하는 방안도 중국 군당국과 논의중”이라며 “지난 3월 이를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에모리대 등과 협력을 논의중이다. 조만간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내년에 의료기기 등록을 위한 절차를 시작하는 등 진출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중국과 미국에서의 정확한 임상시험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그는 “유럽에서는 카세트를 2개 정도 더 개발한 뒤에 현지의 대형 유통업체와 협력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유럽 인증을 받은 기기를 자기 나라에서도 인정하기 때문에 중동 진출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내 의료기기 등록을 위한 임상은 늦어도 내년에 시작하려고 한다. 다만 국내 시판은 당장 고려하고 있지 않다. 성모병원과 지금까지 연구 협력을 해왔기 때문에 성모병원에 기기를 공급하는 방안은 고려 중이다.

바이오메트로는 루시아 관련 특허를 미국에서 8개 취득했다. 미국 출원도 2개 있다. 이밖에 러시아 스페인 중국 한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특허 등록을 추진 중이다. 투자는 약 60억원 유치했다. 지금까지 큰 기관투자는 없었고 개인 위주였지만 이제 기관투자 유치도 추진하려고 한다. 직원은 한국에 17명, 핀란드에 22명이 있다. 유럽연합에서 지난해 200만 유로(약 26억원) 지원금을 받았다.

강 대표는 “예전부터 인체의 신비를 풀어보고 싶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게 핀란드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구체화돼 창업까지 이어졌다”며 “기술 발전을 이끌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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