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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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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진출하면서 전형적인 ‘남부 미국’인 앨라배마와 조지아가 한국과 부쩍 가까워졌다. 제헌절인 지난 17일, 조지아와 맞닿은 앨라배마 소도시 오펠라이카의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앨라배마 거주 6·25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 오찬이었다. 구순(九旬)의 노병들과 지역 경제계 인사들, 주의회 의원 두 명까지 100여 명을 초청한 이는 현지에 공장을 세운 서중호 아진산업 대표였다. 현대·기아차를 따라간 35개 협력 기업 중 하나가 아진이다.

감동의 앨라배마 '6·25노병 위로연'

절절한 인사말, 감사의 말에 이어 10대에 참전한 노병의 답사가 장내를 숙연케 했다. 부산부터 의정부까지, 68년 전 지나쳤던 전장의 지역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짚은 노병은 가슴이 벅찬 듯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 그 폐허에서 기적처럼 피어난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원조 보수’ 남부까지 진출했다. 그런 자기 고향에서 ‘미국의 산업’인 자동차를 생산하며 독일 일본과 경쟁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났다. 그들이 피로 지킨 것은 ‘자유’였다. 그렇게 이뤄낸 것이 한국의 발전이라는 ‘신화’였다.

여흥으로 한국의 전통공연도 이어졌다. 장구 가야금 연주보다, 몇 곡의 가요와 가곡보다, 갈채가 더 쏟아진 것은 10대들의 합주와 합창이었다. 서 대표의 42년 후배인 대구 대건중고 학생 19명의 맑은 화음 ‘오 수잔나’가 노병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그 예전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꼬마들의 손자들이 들려준 미국 민요는 말 그대로 천상의 소리였을지 모른다.

앨라배마의 참전용사 위로연은 어느덧 5년째다. 늘 바쁘고 팽팽한 한국에서는 관심사도 못 되지만, 현지에서는 화제가 된 행사다. 서 대표가 “앨라배마 6·25 참전 노병이 마지막 한 명 남을 때까지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기업들 덩치도 커졌고 세계 각지로 진출도 확대됐지만, 지역사회 기여를 통한 현지화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미국에서 연말에 소방서나 경찰서에 100달러라도 기부하는 우리 기업이나 사업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런 ‘작은 일’에서 오히려 잘 보이는 한국 기업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대기업의 현지 대표도 결국은 월급쟁이’라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서 대표만 해도 맨손에서 30여년간 기업을 일궈온 오너 경영인이기에 적지 않은 비용을 감내하며 참전용사 보은 행사를 매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앨라배마의 최저임금은 시급 7.25달러, 맞붙은 조지아는 5.15달러지만 아진이 10달러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너 경영의 장점이 의외로 여러 곳에서 보인다.

어디로 진출하든 우리 기업도 한층 적극적인 현지화로 더 밀착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부와 보은은 늘 만국의 언어다. 자발적으로 6·25 참전용사를 위로해온 서 대표도 주목해볼 만한 케이스다. 그는 현지 지역병원 건립에 50만달러를 쾌척하고도 흉상 건립 제의를 마다했고, 공장 진입 도로에 개인 이름을 달아주겠다는 제안을 사양하면서도 기부 봉사는 이어가고 있다.

'기업 외교'… 정부도 역할 제대로 해야

기업의 ‘민간 외교’가 갈수록 중요해진다지만 설사 다소 소극적이어도 그뿐이다. 잘해도 표시도 잘 안 난다. 서 대표 경우도 자기 신념과 본인 신명에서 하겠지만, 그래도 ‘과외의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외교는 다르다. 북핵 문제와 통상 현안이 굴러가는 것을 보면 정부야말로 한·미 간 관계 증진을 위해 세밀한 데까지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앨라배마의 작은 오찬 행사 전후에 여러 과제들이 투영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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