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의 광무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초야에서 공부하던 시절, 동문수학했던 친구 엄광(嚴光)을 찾아갔다. 엄광은 황제를 대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황제가 내리는 높은 벼슬도 마다한 채 강호에서 대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했다. 사람들은 엄광의 자(字)를 붙여 '엄자릉(嚴子陵) 선생'이라고 불렀다.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세상사에 무심하여 낚싯대 하나면 그만)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삼공의 높은 벼슬인들 이 강산과 바꾸랴)
平生誤識劉文叔(평생오식유문숙·평생 황제인 유문숙 그대를 잘못 알아서)
惹起虛名滿世間(야기허명만세간·헛된 이름만 세간에 가득하게 했네)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가 엄자릉의 마음을 읊은 ‘조대(釣臺)’라는 시다. 여기서 유문숙은 광무제다. 광무제의 이름은 유수(劉秀), 자는 문숙(文叔)이었다. 삼공(三公)은 천자를 보좌하던 최고 관직이다. 그런 관직도 대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는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엄자릉의 고고한 기상은 후세 시인묵객들이 애송하고 흠모하는 대상이 됐고 그림의 소재도 많이 쓰였다.
단원 김홍도가 56세 때인 1801년(순조 1년)에 그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사진)‘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24일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와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자치통감 권129~132’ 등 4건에 대해 보물 지정을 예고했다.
삼공불환도는 순조 임금이 천연두를 앓다가 완쾌된 것을 기념해 만든 4점의 병풍 중 한 점이다. 경물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한 사선(斜線) 구도를 활용해 역동감을 살렸고, 강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한 큰 기와집과 논밭, 손님치레 중인 주인장, 심부름하는 여인, 일하는 농부, 낚시꾼 등 여러 요소를 짜임새 있게 그려 넣어 전원생활의 한가로움과 정취를 표현했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물들의 모습, 실물 그대로를 묘사한 듯한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원 말년의 창작 활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인물, 산수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뛰어났던 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위에 적힌 홍의영(洪儀泳)의 발문에 따르면 그해 삼공불환도 외에 ’신우치수도(神禹治水圖)‘ 2점,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 1점을 함께 그렸다고 하나 4점의 그림 중 현재까지 알려진 작품은 삼공불환도가 유일하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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