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남미 대륙 동북부에 있는 가난한 나라 가이아나. 국토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4850달러로 세계 104위다. 인구도 78만여 명밖에 안 된다. 이 나라는 16세기 이전까지는 비교적 고요했다. 그러다 서인도회사를 앞세운 네덜란드에 점령된 뒤로 400년 가까이 외침을 받았다. 나폴레옹이 네덜란드를 침략한 뒤로는 프랑스령이 됐고, 그 다음에는 영국령이 됐다.
영국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인력을 조달했다. 인도인은 지금 전체 인구의 44%에 이른다. 1966년 독립한 뒤에도 인도인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다.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도 인도계 독립지도자다. 영국과 인도의 영향으로 남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나라다. 종교는 기독교가 우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 정당이 주로 집권했다. 이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오래 겪었다.
가이아나라는 국명은 원주민어로 ‘물의 나라’라는 의미다. 이 나라 해안에서 2016년 유전이 발견됐다. 매장량이 7억 배럴 이상이어서 인구 80만 명도 안 되는 나라로서는 온국민이 로또 복권에 당첨된 셈이다. 올해 3월 데이비드 그레인저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석유산업과 환경보호를 병행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투자 및 기술을 원한다”며 협력을 요청했다.
지난주에는 석유 메이저 엑슨모빌이 가이아나에서 190㎞ 떨어진 심해에서 최소 32억 배럴의 경질유가 매장된 유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32억 배럴이면 중동국가 예멘의 원유매장량(30억 배럴)보다 많다. 배럴당 70달러만 잡아도 2240억달러어치나 되는 양이다. 이 유정에서 2020년부터 석유가 나오면 가이아나는 1인당 석유 생산량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번 ‘로또’는 엑슨모빌이 2015년 이후 시추한 8번째 유정에서 터졌다. 이보다 더 많은 원유가 그 일대에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가이아나 천연자원부 장관이 “우리 국민 모두 몇 년 뒤에는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들뜰 만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은 “이렇게 큰 부를 누리기에는 가이아나의 정치 체제가 후진적”이라며 “바로 옆 베네수엘라처럼 부패한 정치로 인해 ‘자원의 저주’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가이아나의 지식인들도 석유로 얻는 행복보다는 석유 때문에 일어날 부패와 갈등을 걱정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대부분 이민을 떠날 정도로 희망 없는 나라에서 잇달아 터진 ‘로또’가 자칫 ‘저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원도 없으면서 ‘퍼주기 경쟁’을 벌이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 또한 겹쳐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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