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연금 'A to Z'
비과세 혜택에 출시 이후 큰 인기
'만기환급형' 한달 수천억씩 팔려
저금리 탓 약정이율 밑돌자 갈등
금감원, 미지급금 일괄지급 명령
"불완전판매 일부에 불과하고
약관상 문제없어" 보험사 반발
[ 강경민 기자 ] 금융감독원이 최근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가 고객들에게 1조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미지급분을 일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즉시연금 논란의 핵심은 보험회사가 고객에게 당초 약속한 이율을 밑도는 연금을 지급했는가이다.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떼고 보험료를 운용하는 보험 특유의 상품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항변한다.
비과세 혜택으로 폭발적 인기
즉시연금은 일종의 일시납 저축성보험이다. 고객이 퇴직금 등 목돈을 보험사에 맡기면 연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보험료 전액을 일시 납부하면 다음달부터 즉시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즉시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시연금은 연금지급 방식에 따라 세 종류로 구분된다. 가입자가 생존 기간에 원금과 이자를 나눠 매달 연금을 지급받는 종신형, 생존 기간과 관계없이 약정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나눠 받는 확정기간형, 매월 이자만 연금으로 지급받고 원금은 만기 때 받는 만기환급형으로 나뉜다.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는 건 만기환급형이 유일하다.
세 가지 상품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상품은 만기환급형이다. 2013년 초까지는 즉시연금을 10년 이상 유지하면 차익(보험금-보험료)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았다. 비과세 혜택을 노린 고액자산가들이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 대거 가입하면서 상속형 즉시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세법 개정 이전엔 한 달에만 수천억원의 즉시보험료 수입이 발생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상품이 고액자산가의 세금 회피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부는 2013년 2월 세법 개정을 통해 즉시연금 비과세 한도를 인당 1억원으로 축소했다. 그럼에도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한 대형 보험사는 지난달 한 달 동안에만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상품을 162건 팔아 330억원의 보험료 수입을 올렸다.
“논란은 사업비 떼는 구조에서 비롯”
금감원이 이번에 문제 삼은 즉시연금 상품도 만기환급형이다. 만기환급형은 1억원을 보험료로 냈을 때 매달 이자만 받은 뒤 만기 때 1억원을 돌려받는 구조다. 통상 보험사는 1억원 중 600만원가량을 사업비와 위험보험료 명목으로 뗀다. 나중에 원금을 돌려주기 위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이기도 하다. 보험사는 나머지 9400만원(순보험료)에 공시이율을 곱해 매달 보험금(연금)을 준다. 시장 금리가 낮아지거나 운용에 실패하더라도 당초 약정한 최저보증이율(연 1.5~2.5%) 이상의 연금은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시장 금리가 계속 낮아지면서 당초 약정한 최저보증이율에 못 미치는 연금이 지급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삼성생명을 대상으로 제기된 민원을 심사한 결과 만장일치로 민원인 손을 들어줬다. 삼성생명이 최저보증이율을 지키지 않아 약관상 주게 돼 있는 연금과 이자를 덜 줬다는 것이 분조위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최저보증이율에 곱하는 금액은 보험료가 아니라 사업비 등을 차감한 순보험료라는 것이 보험사들의 항변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낸 1억원에 최저보증이율을 곱하는 것이 아니라 9400만원이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은 “약관에는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따라 지급한다고 명시했고 산출방법서엔 사업비를 뗀다고 명확하게 돼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상품 판매 창구에서 소비자에게 무조건 최저보증이율 이상으로 받을 수 있다며 불완전판매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즉시연금 소송전으로 번지나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가 당초 정해진 이율보다 연금을 적게 지급해 논란을 빚은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대상은 5만5000명, 지급해야 하는 돈은 43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보험업계는 금감원이 즉시연금 전체에 일괄 구제 결정을 내린 데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불완전판매 사례를 마치 전체 가입자 5만 명에게 모두 불완전판매한 것처럼 확대 해석해 일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즉시연금 일괄지급 문제가 소송전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금감원 요구와 법무법인 법률자문 결과 등을 두루 따져본 뒤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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