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를 제외하고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단일 품목으로 교역량이 가장 많은 품목은 커피다. 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원두 세계 교역량은 원유 시장의 10분의 1 수준에 육박한다. 커피가 이처럼 세계인의 대표 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엔 다름 아닌 관세가 숨어 있다.
오늘날 커피의 가장 큰 소비국이자 전도사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언제부터 커피를 즐기게 됐을까. 미국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17세기 후반이다. 처음부터 미국인들이 커피에 주목하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이전부터 즐겨온 차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자 했고, 미국에 물자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던 영국 동인도회사도 식민지인들을 대상으로 차를 판매하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중엽부터 미국인들은 더 이상 차 문화를 즐기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다. 영국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차에 관세를 붙였기 때문이다. 1767년 영국은 톤젠드법(Townshend Acts)을 제정해 차에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미국에 체류하는 영국군의 주둔비용을 미국인들에게 부담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차 가격이 상승하자 미국인들은 네덜란드 등에서 차를 밀수하기 시작했고, 차 무역을 담당하던 영국 동인도회사는 경영난에 봉착했다. 영국 정부는 결국 수출관세를 면제해주고 아메리카 대륙의 차 거래 독점권을 동인도회사에 부여하는 관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 인해 동인도회사는 아주 싼 값에 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된 반면, 미국 밀수업자들은 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후 차 과세에 대한 미국인들의 저항은 점점 거세졌고, 결국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이어진다. 인디언으로 변장한 시민들이 보스턴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 상선에 난입해 차 상자를 바다에 버린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국과 식민지 미국 간 본격적인 무력 충돌 양상이 전개됐다.
‘보스턴 차 사건’이 정치·경제적인 측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차에 대해 미묘한 부정적 편견을 갖게 됐고, 커피가 차와 홍차를 대신해 미국인의 아침 식탁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당시 뉴욕, 펜실베이니아, 찰스턴 식민지 사람들은 식음료 관습을 기꺼이 변화시키는 데 동참했고 이후 커피에 대한 미국인의 선호도는 점점 높아졌다.
미국인들은 커피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코드로 발전시켜 나간다. 미국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관세는 소비 행태를 변화시켜 해당국의 의식주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최근 국제사회에 전개되고 있는 관세 전쟁이 의식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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