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전원생활 문답(8)
기차가 온다는 신호음이 천상의 종소리처럼 들린다. 하늘서 내리는 듯하다. 잠시 후 열차는 서지 않은 채 소나기 소리만 남기고 지나쳐간다. 뒤로 뽀얗게 물보라가 인다. 장마다.
앞치마를 한 중년의 남자가 커피를 내려온다. 커피향 바깥으로 보이는 간이역 플랫폼이 장맛비에 촉촉이 젖어있다. 고요하다 못해 고즈넉하다.
예전 한 때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웅성거렸을 대합실은 나무로 만든 소품들로 가득하다. 제복을 입은 역무원들이 앉아 열차표를 팔던 사무실은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공구들이 들어차 있다. 나무공방이다.
커피 잔을 두고 마주앉은 김광기씨가 시골역을 빌려 우드트레인이란 공방을 차린 것도 벌써 8년째다. 열차도 멈추지 않은 채 지나쳐가는 충북 제천의 간이역에 그는 긴 시간을 멈춰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도 그는 아침부터 공방문을 열고 나무를 깎고 있다.
그가 나무공방을 차린 것, 특히 시골 간이역을 빌려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다.
그는 ‘전기쟁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무대조명 업무를 하는 경기도 공무원이 됐다. 다시 국내 유명 리조트로 자리를 옮겨 공연기획 및 무대조명 등의 일을 했다. 목공에 취미가 있어 직장생활을 틈틈이 목공기술을 익혔다.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쌓였다가도 나무만 만지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목공방을 차렸다. 전기기술자에서 목공예가로 직업을 바꾸는,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도심은 아니더라도 도시 가까운 곳이라야 영업에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왕 할 거면 좀 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문을 닫는 간이역들이 생겨났다. 이것을 활용할 수 없을까를 고민해보았다. 평소 꿈이었던 전원생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역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고향이 양평 용문인데 서울서 학교를 다녔다. 초중학교는 친척집에서 다녔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터는 용문서 서울로 기차통학을 했다. 그 때 보았던 시골역사의 풍경과 지금은 없어졌지만 완행열차 차창 밖 풍경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다. 사철 바뀌는 역 앞 화단의 꽃들과 철길을 건너며 만나는 플랫폼, 완행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나른한 신호음과 느린 기적소리, 장작이 타던 난롯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설렘의 까치발을 하던 사람들, 또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픈 마음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곳, 그 많은 사연들이 만들어지던 곳에 대한 향수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깊어졌다.
그래서 코레일에 간이역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임대도 가능하고 구입도 할 수 있다 했다.
지금은 문 닫은 역들 중 규모가 큰 것들도 제법 되지만 당시에는 오지 마을에 있는 작은 역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합실 하나에 역무원실 하나 있을 정도라 공방으로 사용하기 적당치 않았다. 그렇게 알아보던 중 제천 봉양에 공전역을 만나게 됐다. 충북선 기찻길에 있는 간이역이다. 주변 풍경도 좋았고 시골역 치고는 규모가 컸다. 철도청과 임대 계약을 하고 대합실은 전시실 및 카페로, 역무원실은 작업장으로 꾸몄다.
처음에는 가족들을 도시에 두고 혼자 왔다. 출퇴근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서 분가 시키고 지금은 공방 바로 앞마을에 집을 사 아예 이사를 했다. 바쁠 때는 아내가 공방 일을 도와준다.
시골 간이역에서 공방을 한 시간들을 혼자 가만히 생각할 때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행복했고 또 행복하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가 공방일로 해결이 안 돼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다. 지금도 낮에는 공방을 열고 퇴근 후 야간에는 제천의 버스회사에서 당직을 선다. 버스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관리하고 야간 민원도 해결해 준다. 잠은 회사 기숙사에서 네 시간 정도 자고 아침에 공방으로 출근한다.
주변의 마을사람들과도 친해져 스스럼 없이 지낸다. 주민들과 마을 공동사업도 추진하기도 한다. 인근에 알고 지내는 공예가들과 협업을 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는데 같이 할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간이역은 여러 사람이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이용하려면 까다롭다. 임대료도 만만치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이역을 빌려 공방을 차린 것을 후회할 때도 있는데,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년에 천만원 정도 되는 임대료도 부담스럽고 또 내 것이었다면 주변 정리부터 내부 인테리어 등 다양하게 손보고 꾸며 놓았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쉽다. 설령 비용을 들여 꾸민다 해도 코레일과 상의를 해야 하고 나중에 회수할 보장이 없기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들르는 사람들도 간이역 여행 정도로 생각해 아무렇지도 않게 공방 문을 열고 우루루 들어와 기념사진을 찍고 떠난다. 이런 것들이 때때로 불편하다.
그는 이곳서 직접 만든 기념품을 팔고 커피도 판다. 학교에서 체험교육 의뢰를 받으면 목공체험교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학교를 방문해 진행도 한다.
최고로 인기 있는 것이 ‘우든팝아트기념패’다. ‘우든팝아트’란 자작나무, 편백 등의 나무에 스크롤쏘란 기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공예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딱히 이름이 없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우든팝아트의 창시자인 셈이다. 감사패나 기념품 등으로 인기가 좋아 개인은 물론 단체 주문도 많다. 작품 하나에 10만원 정도한다.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이 수시로 들리고 열차는 여전히 지나쳐 간다. 열차가 서지 않는 한적한 간이역 공방 ‘우드트레인’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올 때나 목공기술을 배우러 수강생들이 올 때는 소란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늘 조용하다. 나무향이 켜켜이 쌓여 있는 나무의자에 푸르른 마을 들판이 걸터앉아있다. 나무일을 하다 그 들판만 봐도 가슴에 초록물이 든다는 간이역 공방주인이다.
전원생활 문답
[문] 간이역 임대하거나 매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코레일이 관리하고 있는 역을 임대하거나 매입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역은 임대나 매입이 어렵고 기차가 서지 않거나 아예 열차가 다니지 않는 역의 경우에는 코레일에서 임대 혹은 매각을 합니다. 임대를 하거나 매입하려면 우선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적당한 역을 찾은 후 코레일과 협상을 하면 되는데 코레일 측에서 임대나 매각 가능 여부, 임대료나 매각 가격, 사용목적의 적합성 등을 판단해 서로 조건이 맞으면 계약할 수 있습니다.
[문] 간이역을 임대해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 쓸 만한 역의 토지와 건물이라면 임대료나 매각금액이 만만치 않습니다. 토지 건물을 나누어 임대할 수 있고 부분적인 임대도 가능한데 만약 건물을 임대해 사용할 계획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고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코레일과 상의해야 하는 번거러움도 있겠지만 그 보다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인테리어 등 투자한 비용을 나중에 회수하기 어렵습니다. 또 대합실과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오래된 경우가 많아 단열 등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에 문제가 없는지도 짚어봐야 합니다.
글=김경래 OK시골 대표
정리=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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