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高價 인수해 회사에 손실 끼쳤다"며 하명수사 밀어붙이더니…
"첫 단추부터 잘못된 수사
정치권 연루 찌라시 돌 때
檢이 프레임 짜놓고 시작" 지적
모호한 배임죄 기준 다시 도마에
M&A 때 CEO 처벌 수단 악용
이석채 前 회장 등 배임 잇단 무죄
[ 안대규/고윤상 기자 ] 부실기업을 고가에 인수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사진)이 3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4월 이석채 전 KT 회장도 정 전 회장과 비슷하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산업 특성 몰이해와 전형적인 ‘표적 수사’, 배임죄에 대한 모호한 해석 등으로 최고경영자(CEO)가 피해를 본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포스코, KT 등을 상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검찰’로서 수사의 칼날을 남용해온 검찰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수사한 檢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전 회장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2010년 5월 플랜트업체 성진지오텍의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도록 지시해 회사에 1592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됐다. 또 슬래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대가로 협력업체 코스틸에 자신의 인척을 취업시켜 4억7200만원 상당의 이득을 얻게 한 혐의(배임수재)도 받았다. 앞서 1·2심은 “인수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았거나 이사회에 허위 보고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서도 “정 전 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수사 단계부터 정치적인 냄새가 나는 등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포스코 수장 교체설’이 돌던 무렵이었고, 성진지오텍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 등 정치권에 인수를 부탁했다는 ‘찌라시’도 돌던 시점이었다”며 “검찰이 큰 프레임을 미리 짜놓고 수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논리는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모두 박살났다. 검찰이 주장한 적법절차 위반, 내규 위반 등은 정 전 회장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삼성증권, 산업은행, 딜로이트안진 등의 당시 실사자료를 내밀어 모두 허구임이 밝혀졌다. 검찰의 유도신문과 압박에 겁을 먹고 잘못된 진술을 했다는 관련자들의 후회도 뒤늦게 쏟아졌다. 검찰이 포스코의 성진지오텍 인수 가격 1600억원 전체를 손해액으로 산정한 것도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오락가락 배임죄 기준 명확히 해야
이석채 전 회장도 지난 4월 횡령, 배임 등의 혐의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계에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검찰을 동원해 회장 교체를 시도해온 지난 정권의 악습이 이번에도 재연됐다고 우려했다. 두 회사의 역대 회장 대부분이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퇴했다.
법조계에선 ‘배임죄’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확한 배임죄 가이드라인이 없어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종종 전임 CEO를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세계적으로 배임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배임죄와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기업을 다양하게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고윤상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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