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원전 탓 인재·연구 기반도 붕괴
수출시장 보고 경쟁력 살려나가야
정범진 <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 >
원자력은 우리에게 세 가지 인연으로 찾아왔다. 일제 식민지 수탈과 6·25 전쟁 끝에 폐허만 남은 때였다. 미국 에디슨사의 회장을 지낸 워커 리 시슬러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인 원자력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결심했다. 1977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계획에 따라 자주국방이 절실해졌던 것은 또 다른 계기였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를 열어줬다. 미국 내 원전건설이 중단되면서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사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한국에 기술전수를 약속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최단 기간에 원전 기술력을 배양하고 국산화를 달성하게 됐다. 중공업, 건설, 부품 등 모든 부문이 이 시기에 혁신적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동반성장’이었다.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유럽 국가의 원전건설을 중단시켰다. 그 결과 유럽 전력시장의 에너지믹스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없게 됐다. 원전건설 중단으로 선진국의 원자력 산업기반이 급격히 붕괴됐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산유국을 포함해 새로이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려는 나라도 나타났다. 미국, 유럽에 건설된 수백 기의 원전 교체 수요도 기대를 부풀렸다.
프랑스 아레바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내다보고 신규 직원을 5만 명 채용했다. 일본 도시바는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시장가격의 3배를 주고 인수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원자력 르네상스의 불이 꺼져버렸다. 미리 투자한 아레바는 핀란드 원전 건설이 9년이나 지연된 탓에 프랑스 전력공사에 인수됐다. 웨스팅하우스의 조지아주 보틀 원전 건설도 5년 지연됐다. 그 결과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를 캐나다 헤지펀드에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UAE에 수출한 원전은 적기에 예산증액도 없이 착착 건설됐다.
우리나라 3대 수출산업은 반도체, 자동차 그리고 조선인데, 조선은 무너졌고 자동차도 신통치 않다. 반도체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자력기술이 있다. 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해 20조원을 벌었다. 앞으로 60년간 부품과 핵연료를 공급하면 10조원 이상 더 벌 수 있다. 우리가 운전을 지원해 60조원을 더 벌어들일 것이다. 정비시장에도 진출한다면 더욱 많은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원자력 기술이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원전 일변도의 에너지 정책 탓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2년까지 운영 허가를 받은 월성1호기 원전을 조기 폐쇄키로 했다. 경북 영덕 등지에 짓기로 한 신규 원전 4기 건설도 백지화했다. 이 여파는 대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학부 과정 개설 27년 만에 처음으로 지원자 제로 사태를 맞았다. 우리 원자력의 미래를 이끌 인재풀이 말라붙지 않을까 걱정이다.
원자력은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계기였고 축복이었다. 세 차례의 원전사고는 오히려 우리나라에 기회를 열어줬다. 이제 원전 수출의 경쟁자는 러시아와 중국뿐이다. 커다란 수출시장이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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